의자론
김민정(시조시인, 문학박사)
물에게 바닥이라는 의자가 없었다면
평등을 보여주는 수평선이 없었을 거다.
물들이 앉은 엉덩이 그래서 다 파랗다.
별빛에게 어둠이라는 의자가 없었다면
희망을 바라보는 마음이 없었을 거다.
별빛이 앉은 엉덩이 그래서 다 까맣다.
의자란 누가 앉든 그 의자를 닮아 간다.
풀밭에 앉고 가면 풀 향기가 스며들고
꽃밭에 앉았다 가면 꽃향기가 스며든다.
- 임영석, 「의자론」전문
고등학교 시절, 조병화시인의 의자를 열심히 외웠던 기억이 난다. 임영석 시인의 의자론을 읽으며 의자의 의미, 자리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고, 나의 삶은 지금 어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인가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러분들은 과연 어떤 의자에 앉아 있나요?
임영석 시인이 생각하는 것은 어떤 의자일까? “지금까지 많은 시인들이 의자에 관련된 시를 썼다. 그 의자를 살펴보면 의자란 엉덩이 붙이고 앉았다 가는 단순한 논리뿐이다. 그러나 그 단순한 엉덩이 붙이고 가는 것에는 삶이라는 숨소리가 묻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물들이 앉는 의자, 별빛이 앉는 의자, 그 의자들이 왜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지, 그리고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의 의자도 풀밭 같은 의자가 있고 꽃밭 같은 의자가 있다. 제각각인 그 의자들을 앉았다 가는 사람의 엉덩이에는 분명히 의자의 냄새가 묻어 있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가 이 단순한 삶의 모습을 통해 의자의 본론적인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겠지만 이 세상 의자는 기득권의 위치를 표현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높은 지위의 의자에 앉았다가 물러났을 때 잘했다는 풍문보다는 험하고 모나고 구린내 나는 모습의 의자들만 생각하게 물러났다. 대통령을 지낸 사람들 모두가 꽃향기 같은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는 것이 아니라 그 의자에 앉았던 시간 동안 저질렀던 일들로 고역을 치르는 일이 매번 반복되었다. 거기에 비하면 민초들의 삶은 항상 풀밭에 펑퍼짐하게 앉아 살아가는 풀냄새가 나고 꽃냄새가 묻어 이 나라가 향긋하다는 것을 느꼈다.”(한결추천시메일-3919(임영석 作/의자론)
의자의 문제일까? 사람의 문제일까? 조병화 시인의 「의자」에서는 앞서간 사람들과 뒤에 올 사람들을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이었다. 선배에게 물려받은 의자를 후배에게 물려줄 수 있는 그런 의자의 의미를 생각했다면, 임영석시인의 「의자론」에서는 의자에 앉았을 때 그것이 풀밭이면 풀냄새가 그 사람에게 배이고, 꽃밭이면 꽃냄새가 그 사람에게 배인다고 했다. 사람이 의자를 닮아간다고 말한다. 이것은 달리 해석해 보면 풀밭이 되게 하는 의자가 있고, 꽃밭이 되게 하는 의자가 있다는 뜻이다. 싱그러운 풀밭, 향기나는 꽃밭이 되게 가꾸어 나가는 것도, 그 의자가 놓인 곳을 그렇게 만들어가는 것도 어쩌면 의자 주인이 해야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 의자가 놓인 곳을 나무와 숲과 꽃과 풀이 조화로운 아름다운 공간으로 만들어 가는 일, 내가 앉은 자리의 주변을 그렇게 만들며 가꾸어 가는 일이 진정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내가 앉아 있는 의자를 다시 한 번 생각하며, 책임감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향기 나는 의자에 앉아다 가야겠다고 다짐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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