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김민정 (시조시인, 문학박사)
바다를 가로 지른 그 새벽 탐석길에
잔설 녹아 윤이 나는 마을 어귀 돌담 너머
말똥히 눈알 굴리며 저 녀석이 납셨다
뱃길 따라 생긴 물띠 아늑하게 번져들고
치자빛 아침놀이 먼데서 바라보자
사방에 초록물 입히며, 제 몸 다시 숨긴다
- 졸시, 「개구리」 전문
우수도 경칩도 빠르게 지나갔다. 3월 초가 되니 서울의 봄도 마음이 바쁜지 비를 자주 뿌린다. 아니 강원도 태백에선 어젯밤도 눈이 많이 왔다고 한다. 하긴 다른 데 보다 벚꽃도 2주 정도 늦게 피는 곳이니 그 곳은 아직도 겨울이 한창인가 보다.
그러나 다른 여러 곳에서는 봄을 알리는 꽃들의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개구리가 나온다는 경칩을 지나면서, 어디선가 본 듯한 겨울잠 덜 깬 듯한 개구리의 눈망울도 떠오르고, 초록빛 윤기 흐르며 날렵한 몸매와 까맣게 윤기 흐르던 눈동자를 지닌 몸집 작은 청개구리도 생각난다. 봄비가 내리면서 그늘에 쌓였던 눈들도 많이 녹았지만, 아직도 군데군데 잔설은 남아 있고, 개구쟁이처럼 뒹구는 봄햇살이 따사롭다. 꽃샘바람이 아직도 얼얼하게 귓바퀴를 때리지만, 오는 봄을 막을 수는 없다.
교실은 작년 그대로이지만, 올해 또 반이 바뀌어 학년을 올라온 학생들을 대하며, 또 한 해를 시작하는 마음은 싱그럽다. 교과서에 실린 오탁번 시인의 ‘고비’라는 작품을 학생들에게 암송하게 하면서, 속으로 나도 가만 외워 본다.
‘솜털 모자를 쓰고/ 시계태엽처럼 돌돌 말려서 나온/ 고비 새싹이/ 아슬아슬/ 꽃샘바람에/ 고개를 갸옷갸옷 한다// 감기 들어 콜록거리는/ 나를 보고/ 할아버지가 혀를 끌끌 찬다/ - 고비가 너보다 낫다!/ 감기 들까 봐/ 솜털 모자 쓰고 나온 걸 봐라// 할아버지는/ 나보다/ 고비가 더 예쁜가 보다/ 꽃샘바람 매운지/ 어떻게 알고/ 고비는 솜털 모자를 썼을까’ 앞마당쯤에 돋아난 고비였을까? 아니면 산책길에 만난 고비였을까? 작은 생명 하나에도 관심을 가지고 경이롭고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이 시인의 눈일까? 작은 사물을 눈여겨보는 시인의 세심한 관찰력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어디 고비뿐이겠는가. 할미꽃도, 양지꽃도, 고사리도 봄비의 물기를 촉촉이 빨아드리며 쑥쑥 자라며 싹을 틔우고 있을 것이다. 어느 새 초록깃발 펄럭이듯 초록빛을 피워 올리는 버드나무들…. 가까운 성내천가의 버드나무를 바라보노라면 봄이 코앞으로 다가왔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봄비가 지나간 자리, 양지쪽에 돋아나는 풀들을 들여다보며, 봄의 경이로움에 또 한 번 감탄을 한다. 작년 늦가을 이효석문학관을 다녀오면서 그 주변에서 모아온 코스모스 꽃씨, 그리고 1년 동안 학교 화단에 직접 심고 가꾸어 아름다운 더덕꽃을 보았고, 그 씨앗까지 열심히 받아둔 더덕꽃씨들…. 조금 더 날이 따뜻해지면 화단을 정리하고 그 곳에 그 꽃씨들을 정성껏 심으려 한다.
그들이 얼마큼 잘 싹을 틔워줄 지, 꽃을 피워줄 지 모르겠지만, 언제쯤 심으면 가장 좋을까를 가늠해 보는 요즈음, 나는 괜스레 마음이 설렌다. 환하고 아름답게 핀 코스모스 꽃밭을 상상하며 혼자 즐거워 입가에 미소를 지어본다. 내가 있는 자리, 내 주변이 늘 환하고 밝고, 기쁨이 넘치는 천국이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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