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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울음을 찾아(7번째 시조집)

모래울음을 찾아

by 시조시인 김민정 2017. 11. 3.

1부 예송리 해변에서

 

 

예송리 해변에서

낙타

모래울음을 찾아

타클라마칸 사막

움집의 내력

빗살무늬 토기

금강시편

선묘의 사랑

대청에 서면

가을 한 잔

가을에는

가을편지

백비

설야

어떤 실직

 

 

2부 심포리 기찻길

죽서루 편지

심포리 기찻길

심포협곡

연어처럼

주목 앞에서

아침, 정동진

사람이 그립거든

추전역에서

폭포와 시

철로변 인생 - 영동선의 긴 봄날 1

철로변 아이의 꿈 - 영동선의 긴 봄날 3

탄광촌의 숨소리 - 영동선의 긴 봄날 25

지그재그 철로 - 영동선의 긴 봄날 46

눈은 내려 쌓이고 - 영동선의 긴 봄날 64

영동선에 잠들다 - 영동선의 긴 봄날 77

3부 마음 한 장

마음 한 장

, 그 순간

기다리는 마음

제비꽃 산책

시인은

도솔암 적요

찻잔 속의 바다

때때로

몽돌을 위한 명상

천지에 와서

가을 데생

가을 종소리

저 길을 따라서

굴렁쇠를 굴리는 밤

대흥사 부처님께 한 고백

 

 

4부 여인

여인

어라연 계곡

바다

화석

매화향기 바람에 날리고 1

꽃길

봄비, 그대

커피 한 모금

불꽃이고 싶은

사랑

사랑, 영원한 길

행복의 나라

음악을 위하여

사랑하고 싶던 날

함께 가는 길

모래울음을 찾아

1부 예송리 해변에서

예송리 해변에서

돌 구르는 밤의 저쪽

퍼덕이는 검은 비늘

등솔기며 머릿결에

청청히 내린 별빛

저마다 아픈 보석으로

이 한 밤을 대낀다

낙지회 한 접시에

먼 바다가 살아 오고

맥주 한 잔이면

적막도 넘치느니

물새는 벼랑에 자고

어화등이 떨고 있다

당신의 말씀 이후

살이 붙고 피가 돌아

삭망의 별빛 속에

드러나는 능선이며

때로는 샛별 하나쯤

띄울 줄도 아는 바다

가슴속을 두드리며

깨어나는 말씀들이

맷돌에 갈린듯이

내 사랑에 앙금지면

바다도 고운 사랑앞에

설레이며 누웠다

낙타

겨운 삶 등에 지고 모래밭을 타박이며

얼마나 느린 발길로 너는 걸어 왔을까

시간은 모래바람 속, 온 길이 다 묻힌다

너를 통해 흘러왔을 나의 강을 바라보며

뜨거운 고도 향해 휘파람을 불어가며

혹처럼 굽은 생애가 신기루로 흐른다

오랜 어둠을 깨며 멀어지는 밤 같은

한 생애 푸른 비단을 펼쳐놓은 저 달빛

속눈썹 짙게 젖어든 외로운 등이 휜다

모래울음을 찾아

돈황 명사산 鳴沙山

모여 사는 바람 있다

잔양殘陽이 능선 위로

저미듯 스며들 때

발자국 남기지 않는

길목을 따라 간다

아랫녘은 푹푹 빠져

발목이 다 잠겨도

바람들이 다져놓은

언덕으로 오를수록

단단한 울음의 뼈가

문양으로 드러난다

타클라마칸 사막

한 때는 물이 흘렀을

건천을 지나가며

내 생도 지고 가는

목마른 낙타 등에

사막을 가로질러 온

낮달 저만 드높다

이리주 한 모금에

길은 자꾸 늘어지고

죽비로 치는 햇살

온 몸으로 견뎌내며

시간을 되감아간다

모랫바람 비단길

움집의 내력

몽촌의 봄기별이 꽃 피듯 건너오는

붉어진 배롱나무 기대어선 선사시대

투명한 살결만 같은 그 내력을 읽는다

아리수 물굽이로 경계들은 무너지고

흘러가는 시간 속을 흘러가는 사람들이

해 돋는 강동마을로 덩굴손을 뻗는다

햇살 따라 얼키설키 엮어가는 역사의 장

그 속에 피던 사랑 배롱꽃에 어리는지

이 아침 한강변 어귀 옛사람의 숨결 깊다

빗살무늬 토기

눈길 덥석 잡아끄는 육천 년 먼 길 너머

죽어서도 죽지 않는 집념어린 토공의 혼

그 손길 둥근 고요가 서려 있다, 암사동

움집 틈새마다 퍼져오는 햇살들이

사선으로 비스듬히 춤을 추는 이랑마다

아리수 고운 파문도 새겨보고 싶었을까

물결로 바람으로 잎맥으로 생선뼈로

신석기 생의 무늬 나긋나긋 굽는 동안

못 이룬 사랑도 몇 닢 얹어놓고 싶었을까

금강시편

비무장 지대

화해와 긴장 속에 철책선은 뻗어 있다

보고가 필요 없는 갈매기들 이착륙이

사는 건 공존이라고 끼룩끼룩 일러준다

상팔담

천 년을 곰삭여도 사랑은 늘 아픈 것

적막강산 달이 뜨면 선녀는 돌아올까

개골산 수척한 그림자, 나뭇꾼이 얼핏 뵌다

만물상

온산 가득 풀어 내린 겨울햇살 기운으로

미인송 숲을 돌아 이곳까지 이르는 길

오늘은 나도 봉우리, 금강 위에 우뚝 섰다

선묘(善妙)의 사랑

이승 인연 다하면

저승에서 만나고

저승 인연 다하면 이승에서 뵈올까요

선묘의 낮은 음성이 예서 다시 들리고

돌때 낀 사리탑 위

별빛 고운 밤이 앉고

빈 공간을 메아리져 돌아오는 그대 생각

때로는 나비가 되어 그리움을 파닥였지

일상의 와중 속에

감정의 선을 둘러

잔기침 한 번에도 푸른 깃을 사리더니

오늘은 천년의 무게로 내 곁에 와 앉는 그대

* 선묘(善妙)는 신라의 의상대사가 당나라(중국)에서 공부할 때, 그를 사모했던 중국의 아름다운 소녀이다. 영주 부석사에 가면 선묘의 사당이 있다.

대청에 서면

흐르는 구름하며

제멋 겨운 나무하며

바람소리 산새소리

데불고 살 줄 아는

설악은

기골 장대한

늠름한 사내였네

한 치 키를 더해 본들

여전히 높은 하늘

팔 벌려 안아 본들

여전히 넓은 세상

인간은

어느 귀퉁이

자기성을 쌓을 거나

가을 한 잔

하늘은 마냥 높고

물빛마저 여문 계절

가을햇살 등에 업고

유유히 날고 있는

잘 익은

가을 한 잔을

그대에게 따릅니다

내미는 손길마다

디디는 걸음마다

꽃등처럼 환해지는

저 가을 한가운데

더러는

열매로 남는

기도가 있습니다

가을에는

나뭇잎이 떨어지면

파문도 그려 내고

바람 부는 날에는

잔물결도 만들면서

가을엔

깊은 산속의

호수가 되고 싶다

버려지고 잊혀지는

우리들의 이야기와

끊임없이 반복되는

출렁이는 삶의 무늬

물결에

지치지 않는

씻고 씻긴 삶이고 싶다

테 두르지 않아 좋은

마음 조릴 것도 없는

낯익어 향수 같은

투명한 저녁노을

그렇게

하루를 닫는

조용한 삶이고 싶다

가을편지

부드럽게 쏟아지는

청량한 햇살 아래

가을꽃처럼 소슬하게

그리움이 피어나면

, 맑은

그대 영혼 같은

가을편지 오실까

가을햇살 나뭇잎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산들한 가을바람

호젓하게 불어오면

, 문득

그리운 고향 같은

가을편지 오실까

물결소리 바람소리

산새소리 들려오고

내 사유의 뜨락에도

하얀 달빛 밤새 내리는

, 푸른

종소리 같은

그대편지 오실까

백비

웅크렸던 붉은 울음

수면 위로 떠오른다

역사의 소용돌이

부유하는 그날들이

아득히

사월을 부르며

저물어만 가는데

제주들녘 물길들은

어디쯤서 다시 만나

저릿저릿 떨려오는

목울대를 적시울까

는개비

어둠을 걷고

네가 일어설 때까지

설야

가슴과

가슴 사이

달무리가 번져 가면

도시는

잠 못 든 짐승

광란처럼 일어서고

타다만

촛불 둘레로

너울대며 앉는 대지

겨울성

가장자리

성가퀴로 돋아나면

그 높은

새둥지에도

등불 하나 걸리고

팔팔팔

끓는 백비탕에

녹아드는 한 생애

어떤 실직

-풍경 '98

선술집

유리창에

희미하게 번져나는

질펀한

생의 우수

무너지는 한숨 소리

찢겨진

한 자락 삶을

저 사내는 우는구나

과육처럼

달콤했던

한 때의 꿈이었나

갈 곳 없는

시간들을

줍고 있는 어떤 실직

아득한

절망 한 잔을

쓰디쓰게 마시는

2부 심포리 기찻길

죽서루 편지

연둣빛 발을 담근 오십천은 더 푸르고

바위도 앉은 채로 놓여 있는 누각에는

한 천 년 받쳐 든 시간 망울망울 부푼다

양지귀 물들이는 산수유 눈을 뜨고

첫마음 못 다한 말 홍매화 옅은 기침

파릇한 햇살 속에서 숨바꼭질 한창이다

돌을 찧어 구멍 내며 소원을 빌었다던

옛사람 그 손길이 뜰에 아직 남았는데

절반은 눈물꽃 맺혀 그렁그렁 피어있다

하늘 향해 돛을 단 관동별곡 가사 터엔

송강의 푸른 노래 봄볕 속에 새순 돋고

오십천 아침을 연다 햇살무늬 반짝인다

심포리 기찻길

기찻길 아스라이

한 굽이씩 돌 때마다

아카시아 꽃내음이

그날처럼 향기롭다

아버지

뒷모습 같은

휘굽어진 고향 철길

돌이끼 곱게 갈아

손톱끝에 물들이고

새로 깔린 자갈밭을

좋아라, 뛰어가면

지금도

내 이름 부르며

아버지가 서 계실까

심포 협곡

바람 타고 날던 익룡

이곳 미처 몰랐을까

백악기 붉은 기침

이제 막 터져올 듯

오래된 미래 같은 곳

푸드득 활개친다

태고적 물소리로,

그때 그 바람이

늠름하고 장엄하게

원시림을 키워낸다

물안개 깊은개 적셔

아침을 열어놓고

일렁이는 햇살아래

반쯤 눈뜬 미인폭포

몸을 날린 절세미인

그 전설이 다시 살아

벼랑을 뛰어내린 물결,

긴 잠을 깨워준다

연어처럼

구만리 대장정길 연어의 푸른 질주

모천으로 가는 길은 치솟는 파도의 갈기

오십천 두고 온 물길,

아득하다

아직은

심포리

기찻길 옆

아버지 산소에는

지금쯤 낙엽송이 한겨울로 기울 텐데

사랑엔 이유가 없듯 피 흘리며 닿고 싶다

주목 앞에서

살아서 이루고픈 꿈이 무엇이길래

이미 죽은 가지 끝이 뭐라고 말을 한다

그 말을 받아쓰느라 바람결이 움찔한다

내 생의 발자국에 우기가 지나간다

사막을 건너느라 부르튼 시간의 발

죽어도 여기 보란 듯, 그 맨발을 내보인다

아침, 정동진

왈칵,

바다를 열자

찬바람이 뺨을 갈긴다

군마가 달려간 자리 뽀오얗게 이는 포말

언덕 위 썬크르즈가 그 속으로 빠져 든다

천지의 자궁문이 조심스레 열린다

신의 손이

밀어 올리는

저 싱그런 햇덩이!

, ,

듣는 황금물 온 바다가 환하다

청춘이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는 자리

너와 나 달려가야 할 붉은 이유 거기 두고

신년호 닻을 올린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사람이 그립거든

설레는 봄바람이 아롱이며 피어날 때

사람이 그립거든, 그대여 기차를 타라

보고픈 마음 하나로 모든 것 용서하며

금빛햇살 타고 오는 대자연의 향연 속에

빛 부신 날개 펴고 불꽃처럼 비상할 때

믿으며 깨달아가며 가쁜 생을 껴안으며

등불 켜듯 환하게 너를 켜는 유리창 밖

초록빛 어린 왕자 그 숨결이 다가 온다

바람은 낮은 곳으로 휘파람을 불며 가고

추전역에서

바람을 켜고 있는 색동의 바람개비

온 종일 일렬종대 누구를 맞고 있나

고향역 아리는 눈길 저 너머 언덕을 본다

산정보다 높게 앉은 잔설 위 햇살처럼

두고 떠난 옛길들이 얼굴 환히 돌아오고

윤이월 깨무는 속살, 봄의 촉이 트고 있다

폭포와 시

단 한 번 직활강 直滑降으로

내려 뛰는 저 단애 斷崖

고생대 불던 바람

회오리로 찾아들어

물보라 무지개 건넌다

두 눈이 멀지라도

내 몸의 관절마다

푸른 별이 돋는다

그 몸속 지층 어디

울렁이는 어지럼증

시 앞에 고꾸라진 채

목숨 놓을 지라도

철로변 인생

-영동선의 긴 봄날 1

무심히 피었다 지는

풀꽃보다 더 무심히

모두가 떠나버린

영동선 철로변에

당신은

당신의 무덤

홀로 지켜 왔습니다

살아서 못 떠나던

철로변의 인생이라

죽어서도 지키시는

당신의 자리인 걸

진달래

그걸 알아서

서럽도록 핀답니다

시대가 변하고

강산도 변했지요

그러나 여전히

당신의 무덤가엔

봄이면

제비꽃, 할미꽃이

활짝활짝 핍니다

세월이 좀 더 가면

당신이 계신 자리

우리들의 자리도

그 자리가 아닐까요

열차가

사람만 바꿔 태워

같은 길을 달리듯이

철로변 아이의 꿈

-영동선의 긴 봄날 3

자욱한 안개 속에

보슬비가 내리면

굴뚝 옆에 앉아서

생솔 연기 맡으며

십리 밖

기적소리에도

마음은 그네를 타고

여덟 시 화물차가

덜컹대고 꼬릴 틀면

책보를 둘러메고

오릿길을 달음질쳐

단발의

어린 소녀가

나폴대며 가고 있다

철로변 아이의 꿈이

노을처럼 깔리던 곳

재잘대며 넘나들던

기찻굴 위 오솔길엔

마타리

꽃잎이 하나

추억처럼 피고 있다

탄광촌의 숨소리

-영동선의 긴 봄날 25

윤기 내며 달려가는

반세기의 역사 앞에

뜨거운 불꽃, 불꽃

가득 실은 화물차는

긴 장화

질척이던 갱도

그 어둠을 사르고

고적한 사막에서

휘파람을 불고 있는

투사의 눈빛 같은

캡램프 불빛 속엔

선인장

꽃보다 강인한

광부들의 숨소리

지그재그 철로

-영동선의 긴 봄날 46

가끔은 묻고 싶은

지그재그 인생길

이곳에 와서 보면

그 이치를 알게 된다

영동선

기찻길에도

지그재그 있다는 걸

가끔은 묻고 싶은

가도 가도 숨찬 인생

이곳에 와서 보면

그 이치를 알게 된다

때로는

바람도 숨찬

언덕길이 있다는 걸

눈은 내려 쌓이고

-영동선의 긴 봄날 64

너와집 코클에서

관솔불이 타던 밤은

웅성이던 겨울바람

그도 잠시 물러나고

가만히

숨죽인 산골

함박눈만 쏟아졌다

하루, 이틀, 사흘

눈은 내려 쌓이고

영동선 기적소리만

간혹 길게 울릴 때

아버지

헛기침 속엔

근심․걱정 쌓여갔다

영동선에 잠들다

-영동선의 긴 봄날 77

긴 겨울 물소리가

깨어나고 있을 무렵

아버진 가랑가랑

삶을 앓아 누우시며

고단한

삶의 종착역

다가가고 있었다

봄날도 한창이던

사월도 중순 무렵

간이역 불빛 같던

희미한 한 생애가

영동선

긴 철로 위에

기적(汽笛)으로 누우셨다

3마음 한 장

마음 한 장

펼치면

온 우주를

다 덮고도 남지요

오므리면

손바닥보다

작은 것이 되지요

마음과

마음 사이에서

웃고 울며 살지요

, 그 순간

하늘의 벅찬 숨결

그대로 땅이 받아

홀로된 꽃대궁도

꽃씨를 받아 둔다

순간은 모두 꽃이다

네 남루도 그렇다

기다리는 마음

기다리던

꽃소식에

마음이 온통 달아

찻잔으로

가는 손길

그도 한참 뜨겁더니

비로소

꽃 한 송이가

내 안에서 벙근다

제비꽃 산책

양지쪽에

볼쏙볼쏙

볼우물이 예쁜 소녀

갸웃갸웃

환한 웃음

서둘러 온 봄나들이

보랏빛 고운 자태가 눈부시게 상큼한

시인은

색안경을

벗어 놓고

세상을 볼 일이다

스쳐가는

바람의 말도

새겨들을 일이다

생각을

되새김하여

가다듬을 일이다

도솔암 적요

마애석불

홀로 앉은

도솔암 댓돌 위에

흰 고무신 한 켤레 누구를 기다리나

그리움

뒷짐지고서

눈만 내리 감은 날

찻잔 속의 바다

실선으로 뜨다가

점선으로 잠기다가

밀물이 되었다가

썰물이 되었다가

저 혼자

잠드는 바다

수평선이 부시다

때때로

마음이

외로울 땐 큰 나무 곁에 선다

무수한

가지와 잎 흔들리고 흔들리며

안으로

감는 나이테

나의 사랑, 나의 길

몽돌을 위한 명상

널 보며

생각한다

세월이 둥글다는 걸

널 보며

생각한다

세상이 둥글다는 걸

생명을

키우는 힘은

둥굶 속에 있다는 걸

천지에 와서

하늘도 여기 와선

제 얼굴을 알아 본다

구름의 둥근 뒷태

슬쩍슬쩍 비춰보고

나 또한

못 다한 안부

목청껏 물어 본다

가을 뎃생

바람도 만취인가

갈밭길이 술렁인다

높을 대로 높은 하늘

저도 잠시 취하는지

흰 구름 몇 송이 뜯어

제 멋대로 널어놨다

가을 종소리

파란 하늘

한 자락이

사르르 내려온다

단풍 물든

산 하나가

파르르 떨려온다

,

느린

깨달음 하나

동그랗게 앉는다

저 길을 따라서

오고 있다

가고 있다

굴렁쇠를 굴리는 밤

마음 속

굴렁쇠 하나

천천히 굴려가며

저공으로 날고 있는 금빛시간의 오아시스

둥글고

둥글고 싶어

몽돌처럼 나를 깎는 밤

대흥사 부처님께 한 고백

대흥사 그 그윽한 골짜기와 동백숲에선

사철 바람이 불어 가끔은 때묻은 머릿결도 씻겨주고 또 가끔은 옷자락 마음자락까지 펄럭여 주기도 했지. 손가락 가락에도 묻어나던 물향기, 구름향기, 진솔향기, 말짱한 사랑향기. 청신암 맑은 약수에다 마음을 깔아 두고 부처님께 고백을 했네.

“허무하고 허무하고 허무하나이다.

피고 피고 또 피는 이 마음이나

지고 지고 또 지는 님의 마음이.

천불전 낡은 싸리비엔 한겨울이 쓸리네

4여인

여인

흔들지 마 흔들지 마

가지 끝에 앉은 고독

와르르 무너져서

네게로 쏟아질라

점점이

흐르는 불빛

불빛 묻고 흐르는 강

어라연 계곡

청산을

넘지 못해

물소리로

우는 강물,

강물을

건너지 못해

바람소리

우는 저 산

아득히

깊고도 푸른 정

한 세월을 삽니다

바다

흰 거품

물고 오는

한 마리 물새였네

오장육부

드러내며

온몸으로 와서 우는

내 죽어

촉루로 빛날

그대 하얀 가슴속

화석

폼페이

최후의 날

껴안고

맞은 죽음

천 년

시간 밖을

거슬러 와

여기 누운

너와 나

실핏줄 속에

다 못 감은

눈길 속에

매화향기 바람에 날리고 1

이 봄 다시

, , ,

그대 깊은 가슴속에

뜨거웠던

눈맞춤의

설레었던

, , ,

하아얀

향기 날리며

봄날 가득 메울래요

꽃길

개나리 진달래가

맞부벼 핀 언덕에

그대와 내가 서면

세상은 참 환한 봄

꽃길을

걸으며 걸으며

하루해가 저문다

봄비, 그대

청초한 꽃망울을

촉촉촉 적시면서

그대 가만 내릴 때면

세상 참 아늑해라

천지엔 환희가 트네

눈부셔라 아, 봄날

커피 한 모금

진한 커피

한 모금,

네 생각을 마시다

궁금함을 삼킨다 그리움을 삼킨다

영롱한

사리 한 방울

내 안에서 커 간다

불꽃이고 싶은

비가 와도

바람 불어도

꺼지지 않을

불씨 되어

언제든

어디서든

그대 향해

활활 타오를

가슴에

불잉걸 하나

간직하며

살고 싶은,

사랑

비가 오면

비가 와서

그리운 사람이여

눈이 오면

눈이 와서

보고픈 사람이여

마음에

늘 고여와서는

떠나잖는 당신이여

사랑, 영원한 길

우리 함께

가는 길은

산길 들길 모래밭길

때로는 바람 불고

때로는 비 내려도

내 안에

머무는 그대

불빛처럼 따스하다

행복의 나라

그대와

내가 있어

달도 별도 빛납니다

그대와

내가 있어

꽃도 새도 예쁩니다

그대와

내가 있어서

행복의 나라 있습니다

음악을 위하여

하르르 무늬바람

하르르 무늬물결

그대 향기 하도 짙어

숨이 막혀 오는 날은

속눈썹 타들어가며

불 지피는 나의 연가

사랑하고 싶던 날

영롱한

별빛보다

더 빛나는 아픔으로

천 년

또 천 년

애잔하게 흐를지라도

이 목숨

푸른 현으로

울리고만 싶던 날들

함께 가는 길

긴 길이면 더 좋겠다

너와 함께 가는 길은

만남과 이별 잦은 우리들의 생애에서

아직도

익숙지 못해

숨 고르지 못한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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