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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겨울 ~ 2015 가을호까지 발표한 작품

by 시조시인 김민정 2015. 11. 22.

V - 트레인

김 민 정

산나리 가지 끝에 신라적 바람이 와

한낮 꽉 채우는 저 왁자한 매미소리

청솔 향 은은히 번져 내 몸까지 푸르다

비탈진 언덕 아래 주렁주렁 열린 홍시

붉게 익은 그 가을을 별빛으로 지나가며

폐광촌 마을 어귀를 어루만져 주는 기차

- 착각의시학, 2014 겨울호

O -트레인

김민정

무지개 열차 안에

무지개꿈 있는 듯이

이어지는 산을 지나

드맑은 내를 건너

한반도 중부내륙을

품안으로 어른다.

- 착각의시학 2014 겨울호

월정리역

김 민 정

새들이 길을 내는 하늘가 철길인가

월정리 녹슨 기차 귀를 열고 듣고 있고

구름도 다붓이 앉아 슬그머니 보고 있다

이끼 푸른 시간 속을 한달음에 날아와서

지뢰밭 언저리에 오랜 둥지 틀었구나

단정학 날갯짓 같은 바람결에 눕는 억새

- 나래시조 2014 겨울호

유리잔도琉璃棧道

- 천문산에서

김 민 정

하늘은 구름 만길

아래는 벼랑 천길

맨발의 유리 길목

걸어간다, 떠서간다

한생도 무중력인 양

내 어깨가 들썩인다

- 오늘의 시조 2015 연간집

봄 마중

김민정

산모롱이 감아 도는 물소리도 자늑하다

전생에서 만난 듯한 부처님 미소 속에

운문사 범종소리가 연초록을 흔들고

일주문에 몰려드는 어린까치 울음소리

낮달이 풍경 끝에 앉았다 지나가고

감잎에 물이 오른다, 비파강 몸짓으로

- 시와소금, 2015 봄호

도라산역

김 민 정

손 뻗으면 닿을 듯이 눈으로는 보이지만

한 뼘 길을 두고서도 늘 멀었던 안부처럼

섬으로 갇혀진 우리, 잠궈버린 문이 있다

진주알로 키워내는 인내의 시간들이

노을빛에 더욱 붉은 감잎의 가을로 와

가끔은 한강 물길도 몸을 틀곤 하였지

서서히 숨 고르며 방향 바로 잡으니

북새바람 갈채되어 종소리로 번져가고

햇살도 북향 쪽으로 실금을 내고 있다

- 시와소금 2015 봄호

차를 끓이며

김민정

시간들이 고여와서 잘박대며 젖어든다

둥글게 물이 들어 와글대는 저녁 창에

뉘인가 휘파람소리 빈 찻잔을 울린다

(시조매거진, 2015 상반기호)

어둠은 주춤

김 민 정

끝없이 펼쳐지는

초원을 주름잡고

갈기를 휘날리며

말달리는 몽골 처녀

저 멀리 게르 몇 채가

바람에 울렁인다

양 볼이 발개지도록

양떼를 몰아오는

건실한 허리춤에

노을이 걸려들 때

어둠은 오다가 주춤,

한 발짝 물러난다

- 시조시학 2015 봄호 여성시조문학회 특집

길은 이어지고

김 민 정

휘어져 자라나도 성장은 계속 되듯

굽어진 길이라도 하늘 향해 나아가듯

가야할 곳이 있는 한 너와 나는 이어지듯

안개 낀 여름 새벽 우포늪을 돌아본다

막 피어난 가시연꽃 그 많은 가시들이

이슬을 물고 있어도 눈물빛을 나는 본다

다시 또 떠오르는 태양의 붉은 기운

꿈 따라 가야할 길 가뭇없이 막막해도

내 속에 푸른 별빛은 발목 환히 비춰준다

- 화중련, 2015 상반기호

아라리 아리리요

- 정선아리랑열차

김 민 정

우리가 안고 뒹굴 꿈을 찾아 가는 길목

태극무늬 앞세우자 기찻길이 열려온다

정선 땅

아우라지 물길

하늘빛도

산빛도

정선의 물레방아 물살 펴며 돌아갈 때

열차는 굽이굽이 산자락을 품고 간다

자물쇠

닮아 있는 곳,

이제사

환히 열며

곤드레 딱주기나물 사절치기 강냉이밥

이 봄날 장터 마냥 와글박작 열차 풍경

삶과 흥

실어 나르며

자진모리로

돌아간다

- 화중련, 2015 봄호

팽목, 그 바다

김 민 정

이 풍랑이 지나가면

마음 한 뼘 자라날까

그리움에 부릅뜬 눈

감지도 못했을 텐데

물결은 몇 천만 번을

망설이고 망설였을까

파도도 날을 세워

울부짖는 다시 오늘

아직도 봄 바다는

눈물 빛 얼룩인데

세월이

세월을 불러도

날지 않는 나비떼

- 시조21, 2015 여름호

봄의 탄주

김민정

물방울 하나까지

남김없이 빨아들인

꽃대궁의 물관으로

지나가는 시간들이

부풀어 터질 것 같다

팽팽하게 당겨보면

귓전을 쓸고 가는

마음 저 편 풍경소리

피안은 바로 거기,

네가 너를 보듬는 곳

묵언에 귀 기울이는

하루가 마냥 깊다

만다라 꽃잎으로

순간이 피고 질 때

발그레 물든 영혼

새 봄이 오고 있다

말갛게 웃다가 잠든

아지랑이 목덜미

- 시조21, 2015 여름호

미완未完의 시

김민정

때로는 잔잔하게

가끔은 급물살로

이완과 긴장 사이

수도 없이 오고가다

마침내 종착점 닿는

우리들의 사랑 같은

네 마음과 내 마음을

한 조각씩 포갰을 때

한 치 오차 없이

그려지는 그 순간이

빛나는 합일合一이라고,

불가분不可分의 힘이라고

절반의 생각 속에

그 절반의 행위 속에

웃음에 스며드는

눈물이 일렁일 때

발꿈치 다시 들고서

한 걸음씩 내딛는다

- 시조시학 2015 여름호 집중소시집

봄의 푯대

김민정

촉 트는

난향기가

입춘 안부 묻는 날은

그 연초록 무게만큼

봄빛 사랑 안겨오고

떠나간

수많은 길도

글썽글썽 돌아온다

- 시조시학 2015 여름호 집중소시집

봉정사 풍경風磬

김민정

맴도는 물결처럼

혈관 타고 흘러든다

하늘과 산사 사이 명지바람 아우르고

햇살은 구김살 없이 새털구름 아우르고

그 환한 기다림 끝

차마고도 푸른 달빛

명징한 울음으로 그대 가슴 때려볼까

처마 및 배흘림기둥 그 품에 들어볼까

- 시조시학 2015 여름호 집중소시집

탑, 앙코르와트

김민정

다섯 개 탑이 솟은 내 전생의 길목에서

정성껏 다섯 손가락 펼쳐드는 나를 본다

수미산 정상에 서서 눈 맑히며 길을 묻는

탑 끝마다 걸려있는 끝 모를 우리 욕망

돌탑 속에 피는 이끼 순간의 전언 속에

서쪽을 향한 문 너머 노을자락 펄럭인다

영광의 그림자로 오늘을 덮고 사는

파파야 나무그늘 바람에 흔들리고

하얗게 이를 드러낸 앙코르가 웃고 있다

- 시조시학 2015 여름호 집중소시집

장군, 길을 나서다

김민정

바람 앞에 더 외로워 빈 들녘에 홀로 선 그

두려움에 떠는 병사, 낙심한 임금 앞에

긴 장계 올린 그 심정 하늘은 알았을까

바다도 피가 끓는 울돌목 소용돌이

살피고 알아듣는 청명淸明한 눈귀 있어

깃발을 치켜세우고 이순신, 앞장서다

코 베이고 귀 떼이며 짓밟히는 민초 앞에

어둠의 장막 걷어 수평선에 걸쳐 놓고

굴절된 시간을 멈춰 거북선을 띄운다

촉 트다

김민정

둥글게 제 몸 말아 한껏 조아린 뒤

두꺼운 껍질 뚫는 세상 이치 아느냐고

무수한 물음표들이

혀를 쏘옥 내민다

빛 부신 별자리가 하늘에만 있지 않고

땅에도 가만 내려 조명등 켜드는가

봄이다, 초록별 세상

나도 촉을 틔운다

- 좋은시조 2015 가을 창간호

원 달라1$

김민정

캄보디아 난민촌을

여행길에 다녀온 후

행복의 방정식이

슬그머니 달라졌다

물에서

나고 자란 아이

오늘도 외치는 말

- 좋은 시조 2015 가을 창간호

신호등

김민정

풍향계가 돌아간다

꽃망울이 또, 터진다

사랑의 이름으로

그대가 내게 올 때

천지간

켜지는 등불

세상은 초록이다

- 유심 2015년 11월호

11월 생각

김민정

가을의 등줄기로

단풍이 타고 있다

잘근잘근 밟히며 온

삶의 질긴 근육들이

물들다,

물들다 못해

지친 날을 쏟는다

- 교차로 신문 11월 발표

선덕의 외출

- 수석을 찾아

김 민 정

신라적 여왕님이 돌 속에 납시었다

가을빛도 무색한 날 궁월을 돌아 나와

사뿐히 가시는 길이 그 어딘가, 궁금하다

궁녀들도 다소곳이 뒤따른 저 모양새

자그마한 저 돌 속에 언제부터 드시었나

시간이 멈춰선 여기 그 옛날이 살아 있다

사모하는 맘이 깊어 수척해진 지귀에게

손목의 팔찌 풀어 가슴팍에 얹어줄 때

주름진 옷자락 사이 금빛햇살 쏟아졌다

- 나래시조, 2015 봄호

비구니

- 수석을 찾아

김민정

전생의 뉘였을까

묵상의 저 뒷모습

반쯤 걸친 가사 장삼

그 조차 무거운 듯

노을도

비껴 앉으며

염주 알로 씻는 번뇌

- 나래시조 2015 봄호

농악놀이

- 수석을 찾아

김 민 정

한 무리 농악대가 흥에 겨운 장마당에

기수들과 잡이들이, 춤을 추는 잡색까지

풍년가 굿거리장단에 열두 발 상모 돈다

풍년기원 오체투지 온 마을이 불 밝히고

하늘도 열어 젖혀 그 뜻을 듣게 하니

땅속도 화답하듯이 울림으로 번져간다

- 나래시조 2015 봄호

봄의 탄주

- 수석을 찾아

김민정

물방울 하나까지

남김없이 빨아들인

꽃대궁의 물관으로

지나가는 시간들이

부풀어 터질 것 같다

팽팽하게 당겨보면

귓전을 쓸고 가는

마음 저 편 풍경소리

피안은 바로 거기,

네가 너를 보듬는 곳

묵언에 귀 기울이는

하루가 마냥 깊다

만다라 꽃잎으로

순간이 피고 질 때

발그레 물든 영혼

새 봄이 오고 있다

말갛게 웃다가 잠든

아지랑이 목덜미

- 나래시조 2015 여름호

화랑관창

- 수석을 찾아

김민정

말고삐를 거머쥐고

황산벌을 찾아갈 때

몇 번이고 돌아봤을

고향의 부모 형제

목숨은 신라에 바쳐도

가슴에는 어머니

- 나래시조 2015 여름호

한라산

- 수석을 찾아

김 민 정

바다가 힘을 모아 번쩍 들어 올렸을까

푸른 말씀 경청하듯 돌올하게 솟구쳐 온

지층엔 맑은 바람이 피가 돌 듯 출렁인다

뭇 생명 꿈틀대는 저 중턱 어디메쯤

차르르 파도치듯 초목들은 자라나고

바람은 휘파람 불며 구름을 벗삼는다

- 나래시조 2015 여름호

거북의 길

- 수석을 찾아

김 민 정

깊푸른 동해물에 맑게 씻긴 생각 건져

목 빼고 발을 들어 바라보는 그 먼 눈길

파도가 오다가 말고 에두르는 아침이다

신라적 수로부인 그를 찾아 나선 걸까

잔치라도 벌일 듯이 입가에 도는 웃음

등 뒤에 업은 자식도 꽃망울로 피고 있다

천지를 오고가는 별무리를 따라가며

창창한 줄무늬로 물길을 짚어가며

발걸음 서둘지 않고 오늘도 너는 간다

- 나래시조 2015 가을호

오세암 이야기

- 수석을 찾아

김민정

낮밤을 손 모으고 관세음보살 염불하니

젖도 주고 안아 주고 같이 놀아 주었다고

관음암 눈 속에 묻혀 한겨울 난 길손이

별들이 스쳐가고 은하 씻긴 자리 아래

밤마다 관음봉을 내려오신 누가 있어

문 열자 그윽한 향기, 목탁소리 가득했다

어머니 부름소리 보살님은 새겨들어

엄동의 눈바람도 가만가만 다스렸나

보살님 어머님 품속 따스하고 올올하다

- 나래시조 2015 가을호

미인도

- 수석을 찾아

김 민 정

한 폭의 풍속화 속 등 돌려 앉은 여인

수밀도 고운 피부 따스하게 다가온다

한 마리 백조가 앉아

제 깃털을 다듬듯

물안개는 자욱하게 둥근 어깨 감싸 안고

숨 죽여 바라보는 고요조차 눈부시다

낭군님 맞이하려나,

머리에도 저 환한 꽃

- 나래시조 2015 가을호

풍악산을 건너다

- 수석을 찾아

김민정

말로는 형용 못 할

돌빛으로 앉은 천 년

수 만 번을 끌어안아

다듬어낸 모서리들

파도가

왔다간 흔적

단풍물도 환하다

- 수석문화 2015 10월호

김민정(金珉廷)

1985년『시조문학』지상백일장 장원 등단. 시조집『백악기 붉은 기침』『영동선의 긴 봄날』『사랑하고 싶던 날』외, 수필집『사람이 그리운 날엔 기차를 타라』, 평설집『모든 순간은 꽃이다』외, 논문집 『현대시조의 고향성』외 다수. 나래시조문학상, 열린시학상, 철도시인공로상 등 수상. 상지대대학원 강사 역임. 한국여성시조문학회 회장 역임. 강동문협 부회장.

*모두 신작이며 ‘봄의 탄주’만 중복 되었어요. 즉 30편 신작이 발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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