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빛 깊게 잠긴 푸른 강물 마주하면
얻은 것 없는 인생, 번지점프 같은 생애
크렁한 슬픔이 되어 흘러가고 있습니다
기쁨들도 슬픔들도 안으로 다독이고
추억들을 감싸안고 욕망들을 잠재우며
아픔의 물비늘들은 반짝이며 흐릅니다
새벽별 반짝이며 이마 쓸어 올릴 때면
조용조용 속삭이는 북한강의 내밀한 말
사랑은 잠든 영혼도 깨워 꽃 피우게 한답니다
미명 속에 잠을 깨어 맑은 얼굴 드러내며
도도하게 흘러가는 저 역사의 강물 위로
장엄한 아침 햇살이 퍼져가고 있습니다
- 졸시,「새벽 북한강」 전문
예전에 교과서 검정을 위해 양평의 한화콘도에 열심히 다니던 때가 있었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에서 사랑 시를 구성하던 젊은 날도 있었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서로 만나 얼싸안는// 두물머리 이곳에서/ 우리 사랑 배워가자// 천천히 아우르면서/ 서로 깊게 흐르는 법’ - 졸시, 「두물머리에서」 전문.
뭔가 일이 잘 안 풀려 답답하거나 조금은 우울할 때, 두물머리에 서서 넓은 강물을 바라보노라면 삶에 찌들어 답답했던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아 자주 그곳을 찾곤 했다. 특히 여름이면 북한강변의 연꽃이 보고 싶어, 혼자 북한강가를 달리며 드라이브를 즐기던 때도 많았다. 지나간 날들을 생각하다가 지금의 내 얼굴 모습은 그때와 얼마나 변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문득 든다. 내 얼굴, 내 모습은 그때와 변함없을까?
‘최후의 만찬’ 모델 이야기가 떠오른다. 이탈리아의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을 그리기 위해 작품 구상을 한 후 성스러운 예수의 모델을 찾기에 고심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찾고자 했던 인물을 발견했는데 그는 ‘피에트로 반디네’라고 하는 교회의 성가대원이었다. 신앙생활에 충실했던 그의 모습은 누가 보아도 편안하고 성스럽게 느껴졌다. 그때부터 ‘최후의 만찬’은 그려지기 시작했고 예수의 모습이 완성된 후 하나의 장벽에 부딪히게 되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예수를 배반한 가롯 유다의 타락한 모습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의에 빠져 고민하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몇 년 후 드디어 그렇게 찾아 헤매던 유다의 모델을 발견할 수 있었다.
타락하고 흉측한 한 부랑자로 인해 드디어 ‘최후의 만찬’은 완성되었다. 그런데 그림이 완성된 뒤 알고 보니 그 가롯 유다의 모델이 된 사람은 다름 아닌 지난날 예수의 모델이었던 바로 그 ‘피에트로 반디네’였다. 음악공부를 하러 간 ‘피에트로 반디네’는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방탕 생활을 하다 보니 포악하고 잔인한 인생 낙오자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자기 자신의 얼굴 모습은 자신이 만들어 간다고 한다. 40대 이후의 얼굴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말도 생각난다. 태어날 때는 부모의 얼굴 모습을 닮았겠지만, 성장하고 살아가면서 착하고 선하게 살아왔다면 그 얼굴 모습에서 그러한 모습이 발견될 것이고, 악하고 못되게 살아왔다면 그 얼굴 모습에서 그것이 나타날 것이다. 얼굴은 마음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얼굴을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어떤 얼굴을 만들어 가든 그것은 자신의 선택이며 자기 삶의 길이다. 늘 남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나부터 실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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