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애잔한 전설의 시화
- 김민정의 「황지연못 - 영동선의 긴 봄날 72」
김민정(金珉廷) 시인의 시집 ?영동선의 긴 봄날?(동학사, 2008)은, 시인의 깊은 서정과 시인이 기록해가는 서사가 충실하게 결속한 일종의 ‘사부곡(思父曲)’이다. 강원도 삼척군 도계읍 심포리에서 태어난 김민정 시인은 이 시집을 통해, 그곳에서 살아가셨고 지금은 고인이 되어 그곳에 누워계신 아버지에 대한 각별한 기억을 펼쳐 보여준다. 시인은 아버지의 삶이 그려내는 동선을 따라 우리의 살아 있는 역사와 철로변의 구체적 경관을 섬세하게 재구성한다.‘영동선(嶺東線)’은 경북 영주에서 강원도 강릉까지 이어진 단선철도인데, 시인은 그곳에서 생을 이어오시고 마감하신 아버지의 삶을 일종의 일대기적 구성을 통해 재현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회상의 방식은 시인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그곳 ‘영동선 철로변’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강렬한 회귀 욕망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된 이 시집 속에는 어머니와 관련된 몇 편의 시도 발견되는데, 그 중에 하나가 어렸을 때 어머니로부터 전해들은 황지연못 이야기다. 이 시집 속에 실린 「황지연못 - 영동선의 긴 봄날 72」은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에 있는 연못으로서, 일반인에게는 낙동강의 발원지로도 알려져 있다. 이 연못에는 오랫동안 전해져오는 전설이 하나 있는데, 바로 연못의 형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김민정 시인은 이러한 ‘황지 연못’의 전설을 시조 양식에 담아 대화체로 들려준다. 마치 어머니가 어린 딸에게 들려주는 옛날이야기처럼, 시인의 어조에는 전설의 서사적 줄기를 전하는 메신저로서의 목소리와, 가장 가까운 대상에게 귓속말을 하듯 친근하게 이야기를 전하는 이야기꾼의 목소리가 함께 담겨 있다. 시인은 옛날 황지에 구두쇠로 소문난 황부자가 살았고 시주 온 스님에게 몹쓸 짓을 했다는 이야기, 며느리가 시아버지 몰래 쌀을 담아 주었다는 이야기, 스님의 이야기를 따라 집을 떠났다가 벼락 소리에 뒤돌아보자 돌이 되어 굳어 간 며느리 이야기, 집터가 가라앉아 연못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차분하고 정밀하게 들려준다. 뒤를 돌아보았다가 돌이 된 여인 이야기는,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뒤돌아보아 소금기둥이 되어버린 롯의 아내 이야기(구약성서 창세기)와 매우 닮아 있다. 어쨌든 황지연못에 서린 이러한 전설을 형상화한 김민정 시조에는, 부자일수록 남들에게 베풀 줄 알아야 한다는 교훈과 함께, 한번 선택을 하면 절대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는 가르침이 동시에 담겨 있다 할 것이다. 참으로 아름답고 애잔한 이야기이고, 기억할 만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 유성호(한양대 국문과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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