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신문>
순수함을 찾아가는 시의 세계
<지상의 꿈>
김민정 시집, 고요아침
“…/청신암 맑은 약수에다 마음을 깔아 두고/
부처님께 고백을 했네/허무하고 허무하고 허무
하나이다/ 피고 피고 또 피는 이 마음이나 / 지고
지고 또 지는 님의 마음이// 천불전 낡은 싸리비엔
한겨울이 쓸리네”「대흥사 부처님께 한 고백 」
여류시조시인 김민정씨가 시집<지상의꿈>을
내놨다. 시 곳곳에서 시각적,청각적 이미지와 자연
친화적이면서도 순수함을 찾아가는 시인의 시세계
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시조로 등단한 작가가 사용
하는 언어는, 시를 읽는데 불필요한 호흡을 동반하
지 않는다. 또 서정적이면서도 주제의식이 뚜렷하다.
88편의 정형시를 수록하고 있다.
<불교신문 2005년 4월 1일 9면, 수록>
*시조문학진흥회(http://sijomunhak.com)의
如心 이인자님이 만들어 준 <지상의 꿈>시집소개입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05. 03. 01 김민정 회원방>
<지상의 꿈> 김민정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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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사진과 글은 숭실대 조규익 교수님
홈페지(http://kicho.pe.kr)에 게재된 글입니다.
(2005. 03. 08. 게시판)
생활주변에 숨어 있는 아름다움을 족집게처럼 찾아내고야 마는, 감성의 시인 우현 김민정박사가 시집 <<지상의 꿈>>을 출간했습니다. 1985년 <<시조문학>> 창간 25주년 기념 지상백일장 장원으로 문단 활동을 시작한 우현시인은 1999년 한국공간시인상 본상, 성균문학상 우수상 등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시인의 평처럼 우현시인은 부드러운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그로부터 아름다움을 기어이 끌어내고야 맙니다. 이 시집에는 제1부(<백로떼 날아오르는> 외 21수), 제2부(<나는 지금> 외 21수), 제3부(<남산의 봄> 외 21수), 제4부(<여인> 외 21 수) 등 88수의 주옥편들이 들어있습니다.
<눈>을 소개합니다. 눈 九林里 산길을 달려가고 있었다 눈발이 거칠다 어둠이 내리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전조등 불빛 속으로 뛰어드는 철 없는 녀석들 승객들은 말이 없다 모두들 섬이 되어 한 아름씩의 그리움을 키워내고 있었다 어느 새 사투리처럼 덜컹거리던 낡은 버스는 九林里 종점으로 들어선다 산짐승의 아가리같은 어둠이 한 입에 나를 삼켜버린다 ... ... ... 내 젊은 날의 낯선 초상화, 전국에 폭설주의보 창 밖에는 함박눈
* 다음은 성균회보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고요아침/ 150쪽 / 6천원)
김민정 동문의 시집 『 지상의 꿈』이 출간됐다. 모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김 동문은 1985년 <시조문학> 창간 25주년 기념지상백일장에서 문단 활동을 시작, 1999년 한국공간시인상 본상과 성균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 밖에도 <국방저널><국방일보> 등 여러 잡지, 신문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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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꿈
시인의 말
적막강산
꽃 피우며
生으로의 긴 긴 여행
천 년을 넘나드는
저 깊은 바람을 뚫고
언제쯤
휘파람 불며
건너갈 수 있을까
序文
김민정 시인의 시조
신년(乙酉) 벽두, 오는 봄을 어떻게 가늠하나? 하고 눈을 감고 앉았는데 느닷없이 김민정 시인이 찾아와서 원고뭉치를 내밀면서 시집을 내겠으니 서문을 써 달라는 소청이 아닌가.
내가 이런 청탁에서 손을 뗀지도 오래 됐고, 또 요즘 詩人이라는 사람들이 당선이니 추천이니 받은 지 사흘만 되어도 ‘머릿말’이니 ‘시인의 말’이니 하여 自序를 부치기가 일쑤인 세상에서,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어 그만 둘까하다가 요즘 세상에서 이 시인만큼 숫된 사람도 드물거니와 이 시인이 白水論을 써서 박사 학위를 받은 文緣도 있고 해서, 몇 자 서문 아닌 소감을 얹기로 했다.
기다리던
꽃소식에
마음이 온통 달아
찻잔으로
가는 손길
그도 한참 뜨겁더니
비로소
꽃 한 송이가
내 안에서 벙근다
-「기다리는 마음」-
시란 말 바깥의 말, ‘言外言’이다. 어떤 事像이거나 어떤 狀況만 보여주면 될 뿐, 중언부언해서는 안 된다. 시는 하나의 ‘提示’일뿐, 그것을 ‘判讀’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시가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될 일’을 이 시인은 잘 알고 있다.
꽃잎과
꽃잎으로
바람에 떨리우다가
불씨 묻은
재처럼
따뜻한 미련이다가
파문만
사름사름 앉는
깨지 못할 꿈이다가
-「어떤 만남」-
시를 하는데 있어서 두 번째 요건은 바깥은 서늘하고, 속은 뜨거워야 한다는 말씀인데, 다시 말해서 재를 헤집다가 불씨에 손을 데는 듯 놀라움을 만나야 된다는 이야기인데, /불씨 묻은 재처럼 따뜻한 미련이다가/ 이 중장은 時調人의 警句, 불씨일시 분명하다.
청산을
넘지 못해
물소리로
우는 강물,
강물을
건너지 못해
바람소리
우는 저 산
아득히
깊고도 푸른 정
한 세월을 삽니다
-「어라연 계곡」-
이 작품은 시인 김민정의 絶唱, 그의 시의 絶頂이다. 시가 여기 와서는 더할 말을 잊는다. 보여주는 景槪에다가, 이기지 못하는 蹉嘆에다가, 들려오는 물소리까지 어우러져 한 폭의 장관을 이룬다. 누가 그린 실경산수가 이만하다 할 수 있겠는가? 진실로의 佳品이다.
/아버지가 웃으시며 영동선을 가고 있다/ 가난도 햇살인양 눈부시게 받아 입고/ 물푸레 나뭇잎처럼 휘적휘적 가고 있다/ 어쩌면 이 한 수 단시조로 아버지가 걸어온 인생살이 뒷모습을 이렇게도 절실하게 그려낼 수 있었는가, 어버이에의 至情이 染衣처럼 가슴속에 묻어난다.
김민정은 江原道人, 강원도는 山道, 강원도에서 시조의 達人 한사람 나와 주기를 懇求하는 마음에서 두어 자 蕪辭로 序에 代 한다.
2005년 歲首 老白 志
제1부 / 백로떼 날아오르는
백로떼 날아오르는
마음 한 장
고독의 순도
뼈대를 세우다
기다리는 마음
종
세월
정동진에서
파도
저 길을 따라서
귀뚜라미 내 가슴에 울다
한 잔의 인생
가을
지상의 꿈
생존의 이유
아, 깊은
절망과 희망 사이
낙엽이 지다
적멸궁
눈
어떤 실직
올가
제2부 / 나는 지금
나는 지금
존재의 가벼움
슬픔처럼 비가 내리고
바다
어라연 계곡
새벽 북한강
어떤 만남
선묘의 사랑
사랑하고 싶던 날
에밀레보다 푸른 사랑
행복의 나라
푸른 신호등
불꽃이고 싶은
음악을 위하여
그리움의 빛깔은
가을편지
작별의 한 때
가을비 내리는 밤
눈사람
겨울편지
연꽃 만나러 가는 길 1
연꽃 만나러 가는 길 2
제3부 / 남산의 봄
남산의 봄
남해 봄빛
봄비 2
봄빛
오, 눈부신
유치환론
진달래 필 무렵이면
등꽃 피는 날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날개
시인은
모교
꿈은 이루어지다
대전 가는 길
평화의 댐 가는 길
태백산
가을 박
여로
눈 오는 아침
영동선 철로변에 4
영동선 철로변에 5
꽃 피는 봄날에
제4부 / 여인
사루비아
서울의 밤
어린 날의 동화
산정호수
겨울행
한계령 설화
오리무중
꽃처럼 피어나라
어머니
여인
그리움
오월
봄날에
우리 사랑은
예송리 해변에서
가을에는
지리산 연가
길을 가다가
때때로 만남은
눈 내리는 밤
설야
선묘(善妙)의 사랑
대흥사 부처님께 한 고백
제1부 / 백로떼 날아오르는
백로떼 날아오르는
눈부시게
맑은 영혼
그 산에 살고 있나
그리움의
북소리
밤새 둥둥 울렸구나
이 아침
우아한 자태
날개 펴는 백로떼
단단히
물고 떠날
생각 하나 얻었는가
불현듯
그리워질
불씨 하나 묻었는가
이제 막
흰 날개 펴고
비상하는 겨울숲
마음 한 장
펼치면
온 우주를
다 덮고도 남지요
오므리면
손바닥보다
작은 것이 되지요
마음과
마음 사이에서
웃고 울며 살지요
고독의 순도
네 고독
그 절정은
순도가 얼마일까
네 고독
그 빛깔은
채도가 얼마일까
네 침묵
그 뜨거운 파문
명도는 얼마일까
뼈대를 세우다
푸른 꿈을 꿀 자유와
싱그러운 자존 위해
파아란 하늘 받친 숲 속의 나무처럼
튼튼한 뼈대 하나를 마음속에 세운다
제각각의 속도와
제각각의 방향으로
튕겨지고 달아나는 우리들의 삶이지만
희망은 망각 속에서 새눈 뜨는 초록별
기다리는 마음
기다리던
꽃소식에
마음이 온통 달아
찻잔으로
가는 손길
그도 한참 뜨겁더니
비로소
꽃 한 송이가
내 안에서 벙근다
종
청동빛 그 무게를
닮고 싶은 날이 있다
푸득이며 날아오를
시간을 기다리며
한때의
울림을 위하여
저 무겁게 침묵하는
은은히 울리면서
빛이 되어 흐르는
천년보다 더 긴 세월
영혼의 기침소리
가파른
생의 계단을
이 밤 누가 오르는가
세월
유명산
갈대밭 위
가을이 지나간다
날개 쉴 줄
그는 몰라
지칠 줄도
그는 몰라
단단한
허공을 가르며
새 한 마리
날고 있다
정동진에서
어둠 속을 달려오는
정동진의 밤 파도
우르르 몰려왔다
재빠르게 달아나며
어린 날 기억 속으로 나를 잡아 이끈다
옷 젖는 줄 모르고
뛰어놀던 백사장에
발자국 지워가며
따라오던 하얀 포말
까르르 자지러질 듯 배꼽잡고 웃고 있다
아련한 영상 속에
그리움의 집을 짓고
잠시 만난 동심에서
아스라이 멀어지는
그대는 삶의 바다에 또 얼마나 젖었는가
두 발을 적시고
온 몸을 적시고
영혼까지 다 적시며
살아온 세월들이
정동진 바닷가에서 철썩이고 있었구나
파도
발돋움하다
발돋움하다
혼자 가만 불러보는
철썩이다
철썩이다
아픔으로 피멍드는
그리운
이름 하나를
끝내 묻지 못하는
저 길을 따라서
저 길 을
따
라
서
가 을 이
오고 있다
저 길 을
따
라
서
가 을 이
가고 있다
오 가 는
길
은
하
나
다
시 간 들 이
다 를 뿐
귀뚜라미 내 가슴에 울다
가을밤
이슥한데
길손이 찾아드네
나,
그대와
더불어
이 밤 가득 취하리라
부어라
이 잔 가득히
달빛 찰찰 넘치도록
밤하늘
야윈 달이
이다지도 서러울까
밤,
이슬에
젖어가는
귀뚜라미 울음소리
가만히
눈을 감는다
생이 반짝 빛난다
한 잔의 인생
한 잔의 술을 마시고
한 잔의 인생을 마시고
강물처럼
바람처럼
구름처럼
흘러가는
삶이여
너, 단단한 허무
껍질 깨고 피어나는
가을
가을이
뚝뚝 지는
강가에 홀로 서면
명멸하는
세기의
불빛이 서럽다
저마다
생의 무게를 끌고
어딘가로 가고 있다
비명처럼
튀어오르는
가을날의 고독을
누군가
나지막이
속삭여 올 것 같은
바알간
와사등 불빛
내 시야에 잠긴다
지상의 꿈
-용문사 겨울은행
비울 것 다 비워낸 가벼운 몸짓으로
가지 사이 이는 바람
그도 모두 보내놓고
비로소
맑은 하늘 한 장
펼쳐드는
저 선사(禪師)
생존의 이유
생존하는 이유를
확인하고 싶은 오후엔
강바람 한아름
안아나 보아야지
차가운 강물에라도
얼굴 한 번 묻어야지
누가 알고 가는가
사랑해야 하는 삶을
누가 잊고 가는가
부서지는 순간순간
가슴에 밀폐되어서
죽어가는 말씀들을…
아, 깊은
하나의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가
천지의
적막을 깨고
내 영혼을 깨울 때
산다는
살아있다는
아, 불면의 깨달음
절망과 희망 사이
기대가 달려간다
바람을 앞세우고
판도라의 상자는
비어 있는 공간임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익숙해진 몸짓으로
우린 이미 알고 있다
하나의 진리쯤은
빈 공간을 채우는 건
각자의 몫이란 걸
꿈으로
가꿔가야 할
아름다운 여백임을
낙엽이 지다
몇 번의 고뇌와
몇 번의 누위침과
몇 번의 한숨과
몇 번의 망설임과
아, 다시
몇 번의 노래로
흔들리며 서는 언덕
적멸궁
인적 그친
하얀 고요
새벽을 내리는데
덕이네
소를 훔친
도둑의 큰 발자국도
어느새
사르락사르락
지워지고 있었다
눈
九林里 산길을 달려가고 있었다
눈발이 거칠다
어둠이 내리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전조등 불빛 속으로 뛰어드는
철없는 녀석들
승객들은 말이 없다
모두들 섬이 되어
한 아름씩의 그리움을 키워내고 있었다
어느 새
사투리처럼 덜컹거리던 낡은 버스는
九林里 종점으로 들어선다
산짐승의 아가리 같은
어둠이
한 입에 나를 삼켜버린다
... ... ...
내 젊은 날의 낯선 초상화,
전국에
폭설주의보
창 밖에는 함박눈
어떤 실직
-풍경 ’98
선술집
유리창에
희미하게 번져나는
질펀한
생의 우수
무너지는 한숨 소리
찢겨진
한 자락 삶을
저 사내는 우는구나
과육처럼
달콤했던
한 때의 꿈이었나
갈 곳 없는
시간들을
줍고 있는 어떤 실직
아득한
절망 한 잔을
쓰디쓰게 마시는
올가
-태풍 '99
섬뜩한 눈빛 앞에
우리는 숨죽였다
그의 눈빛 스쳐간 자리
참혹해라 아, 몰골
둥둥둥 황토수 위를
떠다니는 저, 주검
어둔 하늘 바라보는
익사한 농부 마음
상처의 자리마다
탄식소리 절로 깊다
이대로 무너질 수야
두 팔 걷는 저, 각오
너도 아닌 나도 아닌
무책임한 인재 앞에
해해마다 겪는 난리
분노하는 수재인심
허탈한 가슴속으로
쏟아지는 저, 빗줄기
제2부 / 나는 지금
나는 지금
깃털보다
가볍게
나는 법을
연구 중
무쇠보다
무겁게
갈앉는 법
연구 중
인간의
인간을 위한
사랑법을
연구 중
존재의 가벼움
-사랑의 무게
별이 되어
반짝이는
기다림조차
날개를 단다
제 무게를
털어내는
장자(壯子) 꿈 속
나비처럼
가볍게
날아오른다
우화등선을
꿈꾼다
슬픔처럼 비가 내리고
남해에 와
긴 방파제 거닐며
그대 생각에
젖습니다
가을비를 맞으며
가을비처럼 젖어가는
아득한
그리움의 거리
슬픔으로
출렁입니다
안개 속
깜박이는
먼 바다의
등대 같은
희미한 불빛에도
설레이던 마음 하나
내리는
빗속에 서서
마냥 젖고
있습니다
바다
흰 거품
물고 오는
한 마리 물새였네
오장육부
드러내며
온몸으로 와서 우는
내 죽어
촉루로 빛날
그대 하얀 가슴속
어라연 계곡
청산을
넘지 못해
물소리로
우는 강물,
강물을
건너지 못해
바람소리
우는 저 산
아득히
깊고도 푸른 정
한 세월을 삽니다
새벽 북한강
가을빛 깊게 잠긴 푸른 강물 마주하면
얻은 것 없는 인생, 번지점프 같은 생애
크렁한 슬픔이 되어 흘러가고 있습니다
기쁨들도 슬픔들도 안으로 다독이고
추억들을 감싸안고 욕망들을 잠재우며
아픔의 물비늘들은 반짝이며 흐릅니다
새벽별 반짝이며 이마 쓸어 올릴 때면
조용조용 속삭이는 북한강의 내밀한 말
사랑은 잠든 영혼도 깨워 꽃 피우게 한답니다
미명 속에 잠을 깨어 맑은 얼굴 드러내며
도도하게 흘러가는 저 역사의 강물 위로
장엄한 아침노을이 퍼져 가고 있습니다
어떤 만남
꽃잎과
꽃잎으로
바람에 떨리우다가
불씨 묻은
재처럼
따뜻한 미련이다가
파문만
사름사름 앉는
깨지 못할 꿈이다가
선묘(善妙)의 사랑
이승 인연 다하면
저승에서 만나고
저승 인연 다하면 이승에서 뵈올까요
선묘의 낮은 음성이 예서 다시 들리고
돌때 낀 사리탑 위
별빛 고운 밤이 앉고
빈 공간을 메아리져 돌아오는 그대 생각
때로는 나비가 되어 그리움을 파닥였지
일상의 와중 속에
감정의 선을 둘러
잔기침 한 번에도 푸른 깃을 사리더니
오늘은 천년의 무게로 내 곁에 와 앉는 그대
* 선묘(善妙)는 신라의 의상대사가 당나라(중국)에서 공부할 때, 그를 사모했던 중국의 아름다운 소녀이다. 의상대사가 고국 신라로 돌아오게 되자, 바닷가에서 그 배를 바라보다가 바다에 몸을 던져 용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의상대사의 배를 보호 하여 무사히 신라에 닿게 하였고 의상대사가 영주부석사에 터를 닦고 절을 세우려할 때 그곳의 요괴들이 방해를 하자, 용이 바위를 들어올려 그들을 물리쳤다고 한다. 그때서야 의상대사는 선묘의 사랑을 깨닫고, 절 이름을 '부석사(浮石寺)'로 짓고, 선묘의 사당을 지어주었다 한다. 지금도 영주 부석사에 가면 선묘의 사당이 있다.
사랑하고 싶던 날
영롱한
별빛보다
더 빛나는 아픔으로
천 년
또 천 년
애잔하게 흐를지라도
이 목숨
푸른 현으로
울리고만 싶던 날들
에밀레보다 푸른 사랑
우주를 다 주어도 바꾸지 않을 사랑 하나
펄펄 끓는 용광로 속 뼈도 혼도 다 녹여서
에밀레 애절한 울림으로 태어나고 싶어라
밀물 같은 그리움 가득하게 차오르면
동백보다 붉은 울음 그렁그렁 쏟으면서
사뿐히 승천하리라 청아하게 울리리라
깊고 맑은 종소리 온 세상에 퍼져가듯
그대 안에 융합하는 아름다운 사랑노래
천지에 빛나는 기쁨 영롱하게 울리리라
천년을 내리게 될 꽃비 같은 그리움과
천년을 살아 숨쉴 불꽃 같은 그대 사랑
에밀레 푸른 목숨으로 다시 태어나리라
행복의 나라
그대와
내가 있어
달도 별도 빛납니다
그대와
내가 있어
꽃도 새도 예쁩니다
그대와
내가 있어서
행복의 나라 있습니다
푸른 신호등
눈부시게 찬란한
오월하늘 높이까지
생명이 넘쳐나는
오월땅속 깊이까지
천지간
푸른 신호등
우리 사랑 달린다
풍향계가 돌아간다
꽃망울이 터진다
다사로운 하늬햇살
싱그러운 하늬구름
고요히
푸른 하늘에
스미는 사랑, 향기
불꽃이고 싶은
비 내려도
바람 불어도
꺼지지 않을
불씨 되어
언제든 어디서든
그대 향해 활활 타오를
가슴에
불잉걸 하나
간직하며
살고 싶은
음악을 위하여
하르르 무늬바람
하르르 무늬물결
그대 향기 하도 짙어
숨이 막혀 오는 날은
속눈썹 타들어가며
불 지피는 나의 연가
슬픔이 퐁당퐁당
그대 늪에 던져질 때
그대 안에 자라나는
아, 푸르른 그리움
어둠을 밝히는 고요
깊은 그대 삶의 탄주
그리움의 빛깔은
눈부시게
쏟아지는
저 무량의 가을 햇살
나비처럼
팔랑이는
저 노오란 은행잎
불처럼
타오르고 있는
저 빠알간 단풍잎
가을편지
부드럽게 쏟아지는
청량한 햇살 아래
가을꽃처럼 소슬하게
그리움이 피어나면
오, 맑은
그대 영혼 같은
가을편지 오실까
가을햇살 나뭇잎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산들한 가을바람
호젓하게 불어오면
오, 문득
그리운 고향 같은
가을편지 오실까
물결소리 바람소리
산새소리 들려오고
내 사유의 뜨락에도
하얀 달빛 밤새 내리는
오, 푸른
종소리 같은
그대편지 오실까
작별의 한 때
강 건너
마을에는
불빛이 피어나고
하늘에는
성근 별들
하나 둘 돋을 무렵
그리운
그대 얼굴 같은
강변 하얀 갈대꽃
가을비 내리는 밤
영혼의
젖은 음색
갈피갈피 부리면서
추억처럼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리는 밤
기다림
등불을 켜고
만리 밖을 비추네
눈사람
온종일
기다렸다
슬픔이 밀려왔다
전화벨도 울리지 않는 절해의 고도
나의 긴
기다림 속으로
펄펄 눈이 내렸다
마을 어귀
망부석처럼
서 있는 눈사람
그의 몸 구석구석을 휘돌아 흐르는
하이얀
그리움의 피돌기
순교의 절창이 빛난다
겨울편지
속뼈까지 다 드러낸 내 그리움 닮아 있어
자꾸자꾸 쓸어주고픈 잎 다 진 가로수가
호호호 입김을 불며 다가서는 계절입니다
눈시울 붉혀오던 그 가을도 다 보내고
목숨의 결을 흔들며 깊은 삶을 탄주하는
한겨울 뿌리 깊은 나무 내 안에서 자랍니다
찬바람과 눈보라 속 쓸쓸함도 다 지우고
하늘 닮은 맑은 눈빛, 푸른 희망을 담아
연화대 부처님 같은 환한 미소 보냅니다
언 손을 녹여주고 시린 마음을 데워주고
모락모락 정담 피어날 한 잔의 차 그리워
찰랑한 기다림 속에 겨울편지 씁니다
우리들의 눈빛 속에 출렁이는 기쁨 같은
사랑을 가득 담아 축복을 가득 담아
이 겨울 함박눈 같은 편지 띄워 봅니다
연꽃 만나러 가는 길 1
연꽃 만나러 가는 길은
긴 긴 그리움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내 안에서 피어나던
수련보다 더 고운
아련한,
연분홍 그리움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푸르른 하늘을 향해
싱싱한 꽃대궁을 밀어올리는
그 아름다운 연꽃의 꽃대는
그대 향한 뜨거운 그리움이라는 걸
비로소 알았습니다
연꽃 만나러 가는 길 2
연꽃 만나러 가는 길은
연꽃처럼 환한 사랑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내 안에서 자라나던
사랑의 씨앗이
환하게 잎 틔우고 꽃 피우는 걸
보러 가는 길임을 알았습니다
잔잔한 수면을 향해
힘차게 솟아오르는 푸른 잎과
어여쁘게 얼굴 내민 연분홍 꽃송이가
그대 향한 뜨거운 사랑이라는 걸
비로소 알았습니다
제3부 / 남산의 봄
남산의 봄
보드라운
느티 속잎
푸드득 날개 펴면
저것 봐
저것 좀 봐
천지간의 초록 물결
생명 그,
만발하는 무지개
분수처럼 솟구치는
하늘하늘
아지랑이
온 서울을 휘감더니
오늘은
남산골에
잔치마당 열렸구나
연초록
고운 바람이
사운대고 있잖아
남해 봄빛
가지 마다
가득 돋은
푸른 봄을
보고 왔다
남해 통영
달아 공원
이른 봄의
청매 향기
마음에
실어온 봄빛
온 서울에
풀어 놨다
봄비 2
대지가
만삭인 걸
재빠르게 눈치 채고
삼신 할매
신비한 손
그가 먼저 내밀어
촉촉이
양수 터트려
푸른 봄을 낳고 있다
봄빛
여린 나뭇가지에
파득파득 잎 돋우고
개나리 노란 볼에
싹싹 부벼 꽃 피우고
살살살
햇살 뿌리는
춤추는 너는 환희
겨우내 팔 벌렸던
그늘진 삶의 자리
민들레 두어 송이
화알짝 웃게 하며
파르르
생명 틔우는
상큼한 너는 미소
오, 눈부신
보오얀
꿈을 꾸는
아가의
솜털 같은
고요한
햇살 속에
터지는
초록 함성
팽팽히
부풀어 오르는
우리들의
얼굴,
봄
유치환론
-靑馬거리
행복의 시인으로
그는 행복 했었을까
우체국 앞 하얀 목련
이영도를 닮았을까
푸른 말
울음소리에
노을이 또 타고 있다
진달래 필 무렵이면
-박종화 선생 묘소 앞에서
눈부신 봄햇살 속
진달래 필 무렵이면
꽃보다 더 붉은 마음들이 모여들어
청자부 가락을 타고 구름인양 둥둥 뜬다
살아서 본 적 없는
까마득한 후배 앞에
잣나무 가지 끝의 푸름으로 일렁이며
당신은 봄빛이 되어 내려오고 있는 건가
푸르른 하늘에는
봄빛이 춤을 추고
별빛 담은 눈빛들이 싱싱한 풀빛들이
사월의 향기가 되어 당신 숲에 펄펄 날려
진달래 꽃술 빚어
잔 가득히 채워놓고
웃음 끝에 묻어나는 추억의 하얀 살결들
저마다 가슴 속에도 봉분 하나 세워 본다
등꽃 피는 날
물감처럼
풀어놓은
연보라빛
그리움이
송이송이
등 밝히고
하늘 속에
드러나는
화창한
사월 하루가
꿈결처럼
흐르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어디일까
알 수 없는
지금 내가 서 있는 곳
세상은
나로부터
얼마나 멀리 있고
나는 또
중심으로부터
얼마만한 일탈일까
날개
여명의 가슴 위로
새 천년의 해가 뜬다
달려가 안아야 할
무한의 가능성이여
푸르고
힘찬 비상을 꿈꾸는
오, 희망에 부푼
눈빛들
우리들의 기대 속에
푸른 미래 숨어 있다
너와 나의 만남 속에
뜨거운 사랑이 숨쉬고 있다
기쁨과
사랑이 넘치는
오, 맑고 밝은
생명의 빛
출발의 시간이여
장엄하게 종을 울려라
상서러운 그 종소리
가슴마다 물결쳐라
역사는
너와 나의 존재 위에
오, 새롭게
태어난다
시인은
색안경을
벗어 놓고
세상을 볼 일이다
스쳐가는
바람의 말도
새겨들을 일이다
생각을
되새김하여
가다듬을 일이다
모교
싱그러운 오월의
눈부신 햇살이다
초록으로 빛나는
아카시아 향기이다
열여덟 왕자바위에
첫사랑이 흐르는
나비처럼 날아와 앉는
아름다운 젊은 날
반짝이는 눈동자로
왁자한 이야기꽃으로
뜨겁게 달아오르는
등꽃나무 그 벤취
까르르 소녀들의
진주빛 웃음 속에
뽀얀 꿈이 자라나고
오롯이 사랑 피는
거기엔 영원한 청춘,
시들지 않는 꽃이 있다
꿈은 이루어지다
-월드컵 신화
마음들도
모이면은
산이 되고
바다 되고
오!
필승!
힘찬 메아리
천지가
들썩이고
아, 붉은
큰 꽃 한 송이
피어나고
있었다
대전 가는 길
장호원 쯤 되었을까
가로수가 멋진 구간
뼈 앙상한 겨울나무
생선가시에 비유했던
기형도
날카로운 눈빛
아직 살아 빛나는
파로호 가는 길
아리디 아린 기억 파로호는 눈을 뜨고
이끼 낀 비목에도 새파랗게 돋아나는
설움은 굽이굽이길 비단처럼 펼쳐진다
해산령 마루에 들꽃으로 흔들리다
두견이 울음소리에 꽃대만 남아 떠는
슬픔은 이 땅 위에 피는 또 하나의 꽃이었다
그 날의 젊은 피 노오란 달맞이꽃
고향 못간 그 사연을 향기로 띄우나니
못다 핀 젊은 꿈 두고 강물은 흘러간다
* 파로호 부근은 6.25 때 격전지로 수만의 젊은이가 전사한 곳이다
태백산
산과 산이 사이좋게 어깨 턱턱 걸치고
능선은 능선끼리 서로서로 손을 잡고
골짜긴 골짜기끼리 맑은 물을 담고 가네
큰산은 큰산대로 작은산은 작은대로
수풀은 수풀대로 나무는 나무대로
저마다 제 몸무게로 제자리를 지키네
가을 박
맑고 깊게
울리는
선율처럼
부드럽다
익을수록 의연해져
스스로 둥글어져
속조차
텅텅 비워가는
저 겸허한
삶의 방식
여로(旅路)
감추어 둔
설움도
목이 메는 밤이 있다
살아 갈수록
정은 멀고
인생도 아득하고
천리 밖
수심만 쌓여
나부끼는
밤이 있다
눈 오는 아침
이 아침
내리는 눈으로
세상은
온통 환해
떨어뜨릴
잎도 없는
겨울나무
그가 되어
내 중심(中心)
들여다보며
눈과 귀를
씻습니다
영동선 철로변에 4
아버지가
웃으시며
영동선을 가고 있다
가난도 햇살인양
눈부시게 받아 입고
물푸레
나뭇잎처럼
휘적휘적 가고 있다
눈 덮인
산과 계곡
그 늠름한 능선들이
뼈에 절은 아픔같이
희미한 꿈결같이
삶에다
만장 두르고
펄럭이며 가고 있다
영동선 철로변에 5
철길가
아지랑이
속살처럼 눈부신 봄
흔들리는 잎새 위의
햇빛은 조각비단
파릇한
기적소리에
고향잔디 놀라깬다
호랑나비
나래짓에
봄빛은 화사해도
쌀 한 줌에 산나물 몇 줌
묽은 죽을 끓이시며
애잔히
함께 끓이시던
보릿고개 넘던 사랑
꽃 피는 봄날에
돌아보면 아득한 세월 다시 봐도 숨찬 고개
인생길 굽이굽이 그 숱한 풍상도 가고
오늘은 잔잔한 호수 물결만이 곱습니다
젊었을 땐 곱던 얼굴 인자하던 당신 손길
봄볕에 피어나는 아지랑이 같은 사랑
그 손결 그 마음결에 육남매가 컸습니다
한 굽이 돌 때마다 출렁이던 물굽이여
어느 때 어느 곳에 시름 떠날 적 없으셨을
당신의 주름살에는 세월이 와 감깁니다
꽃 피고 잎도 피고 새도 우는 이 봄날에
햇살 끌어 드리는 축복의 잔 받으시고
당신의 남은 생애를 행복하게 누리소서
제4부 / 여인
사루비아
(1)
드높은
하늘 위로
푸른 꿈을 띄우고
선홍빛
어여쁜 숨결
뜨겁게 토해내며
가을이
부르는 노래
저
선명한 아리아
(2)
에메랄드
하늘 아래
푸른 숨을 내쉬며
밝고 고운
햇살들이
내려앉은 꽃잎마다
고향의
오솔길 같은
저
낯익은 그리움
(3)
푸른 달빛
찰랑이는
유월의 숲을 지나
맑고 환한
얼굴의
형형한 가을 눈빛
투명히
피어오르는
저
눈부신 사랑
서울의 밤
꿀벌처럼
윙윙대며
온 하루를
퍼덕이고
서있는 듯 하면서도
끊임없이 움직이며
거대한
바퀴를 달고
굴러가는
서울, 밤
어린 날의 동화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내 유년의 뜰 안을 재재대던 어린 새떼
그리움 살며시 날아와 내 어깨에 앉는다
개똥벌레 잡아서 꽃등불 밝혀 들고
밤하늘 별을 헤며 꿈 키우던 가시내들
어느 덧 불혹을 넘어 삶의 문을 열겠지
봉숭아꽃 빨갛게 손톱들을 물들이고
새악시 꿈을 꾸며 붉어지던 그 얼굴들
여름밤 풀벌레 소리에 쌓여가던 추억들
푸른 꿈 날개 달고 푸른 하늘 날았었어
산과 들을 뛰어 놀며 멀리멀리 날았었어
그 시절 그 푸르던 날로 날아가고 싶어라
사시사철 끊임없이 놀이를 생각해 내
늘 새롭고 싱그럽던 어린 날의 꿈 동산
내 유년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산정호수
어느 머언
기슭 돌아
그대 모습
펼치는가
의연히 버틴 바위들
병풍처럼 둘러치고
그림자
드리운 능선
가슴 속에
품으며
푸른 잎도
다 떨구고
다시 봄을
기다리며
싹 틔울 눈 키워가는
겨울나무 벗하면서
빛나는
미래를 꿈꾸는
그대 푸른
눈동자
겨울행
마음속에
등불 하나
고요히
밝혀 들고
순백의
설렘으로
다소곳이
고개 숙인
청초한
겨울의 신부
눈이 시린 용문산
한계령 설화(雪花)
숙연하게
피어나는
넌 분명 지귀(志鬼)의 혼
가슴의 불 활활 타올라
신라 하늘 물들이던
그 날의
타던 네 눈썹
눈꽃 되어 여기 피네
* 지귀는 선덕여왕을 사모했다는 미천한 신라인이다. 선덕여왕을 만나고 싶어하여 그녀가 불공을 드리러 가는 날 절 입구에서 만나기로 하였으나 그녀가 불공을 다 드리고 나와 보니 그는 그동안 너무 긴장하고 있다가 지쳐 잠이 깊이 들어 있었고, 선덕여왕은 지귀를 깨우지 않고 그녀가 꼈던 팔찌를 벗어 그의 가슴에 얹어놓아 그녀가 다녀간 흔적만을 남겼고, 잠을 깬 지귀는 너무 감동하여 가슴에서 불이 일어났으며 그 후 신라를 지켜주는 호국신이 되었다고 한다.
오리무중(五里霧中)
푸름이 출렁이는 오대산을 넘을 무렵
돌연한 짙은 안개 눈앞을 가로막아
눈은 감감 귀는 멍멍 땀도 촉촉 정신은 아찔
전조등 불빛 켜고 창문 열고 속도 줄여
굽이굽이 산비알길 조심조심 달리는데
열려진 차창으로 어느 새 스민 안개
얼굴과 팔다리에 감겨드는 그 촉감에
달빛인양 냇물인양 젖어들고 싶었지만
한참을
달려보아도
알 수 없는 그 속내
꽃처럼 피어나라
-이 땅 청소년에게
지식과 정보들이 빛살처럼 쏟아지고
나만이 고립되어 살아갈 수 없는 시간
화해와 협력의 세대인 아들들아 딸들아
예리하게 촉수 세워 꿀벌처럼 부지런히
개성들과 특기 살려 정체성을 간직하고
뜨거운 인간미 함께 지덕체를 지니거라
원대한 꿈을 지녀 인류 평화 생각하고
내 민족을 가족처럼 아끼고 사랑하며
이 땅의 푸른 미래를 개척하고 가꾸어라
백두대간 푸른 정기 오늘에 되살리며
한라에서 백두까지 백두에서 한라까지
힘차게 일어나거라 꽃처럼 피어나라
어머니
당신이
가꾼 뜰에
바람이 와 머뭅니다
당신이
가꾼 뜰에
햇살이 와 잠깁니다
당신이
가꾼 뜰에서
꽃이 피어 납니다
여인
흔들지 마
흔들지 마
가지 끝에 앉은 고독
와르르
무너져서
네게로 쏟아질라
점점이
흐르는 불빛
불빛 묻고 흐르는 강
그리움
이만큼 물러서도
너는 한결 같구나
밤마다 기슭에선
흰 물결로 넘치더니
가슴에
찍어둔 지문 한 점
지워질라, 지워질라
귀 막고 돌아서야지
씹지도 못할 슬픔
촛농처럼 녹아내려
사그라질 목숨 터에
고독은
안으로 접자
허무로나 키우자
조약돌 같은 맹세
텃세 짙은 땅에 깔리면
꿈보다 더 아득히
손짓해 부르면서
목덜미
적신 하루가
탱자울을 넘어 가네
오월
말하고
싶었었다
고백하고
싶었었다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너무도
너는
순수했고
푸르렀고
맑았다
봄날에
세상사
시끄럼도
네 앞에선 남실바람
잠길 듯
다시 뜨는
해말간 미소 하나
고요히
앙금 갈앉는
가슴 벅찬 기쁨이여
속살 깊이
키워내는
여리디 여린 생명
다독여
가꾸는 일이
일생의 숙제인 듯
지열은
가슴에 조차
불씨 하나 남긴다
우리 사랑은
네 안에서 내가 자라
내 안에서 네가 자라
비 그친 하늘 아래
유월의 숲 속처럼
우리는
어우러진 나무
이루어질 숲, 그늘
날마다 조금씩의
기다림을 먹고 크는
칠월의 덩굴이듯
끝도 모를 생명의 움
장마 속
수국을 닮아
물기 떨며 핀 그리움
예송리 해변에서
돌 구르는 밤의 저쪽
퍼덕이는 검은 비늘
등솔기며 머릿결에
청청히 내린 별빛
저마다 아픈 보석으로
이 한 밤을 대낀다
낙지회 한 접시에
먼 바다가 살아오고
맥주 한 잔이면
적막도 넘치느니
물새는 벼랑에 자고
어화등이 떨고 있다
당신의 말씀 이후
살이 붙고 피가 돌아
삭망의 별빛 속에
드러나는 능선이며
때로는 샛별 하나쯤
띄울 줄도 아는 바다
가슴속을 두드리며
깨어나는 말씀들이
맷돌에 갈린 듯이
내 사랑에 앙금지면
바다도 고운 사랑 앞에
설레이며 누웠다
가을에는
나뭇잎이 떨어지면
파문도 그려내고
바람 부는 날에는
잔물결도 만들면서
가을엔
깊은 산 속의
호수가 되고 싶다
버려지고 잊혀지는
우리들의 이야기와
끊임없이 반복되는
출렁이는 삶의 무늬
물결에
지치지 않는
씻고 씻긴 삶이고 싶다
테 두르지 않아 좋은
마음 조릴 것도 없는
낯익어 향수 같은
투명한 저녁노을
그렇게
하루를 닫는
조용한 삶이고 싶다
지리산 연가
산이 산을 부르고
인간이 인간을 부르는
넉넉한 그대 품에 안기고 안기는 건
구름뿐 아니었더라 바람뿐이 아니더라
산이 높아 골도 깊은
그대 자락을 도는 안개
무성한 푸른 숨결 물소리로 와 앉으면
하늘엔 별들이 뜨고 지상엔 사랑 뜨네
사무침을 불러 모아
우렁우렁 산이 울면
한도 풀고 설움도 풀어 섬진강을 흘려 놓는
지리산 자락자락을 휘감는 그대 사랑
길을 가다가
어디쯤에 와 있는가
성에가 자욱한 아침
사는 일에 바빠서
쳇바퀴만 돌리다가
아득히
짚어보는 나의 자리
그리고 너의 자리
그대는 나를 잊고
나 또한 그대를 잊고
안개에 젖어가듯
인생에 젖어가며
그렇게
이 아침을 살아가리
첫사랑 그대는
눈 앞에서 사라지는
무수한 발걸음 속
그대의 발걸음도
어느 하나 이리라
턱없이
약속도 없이
다가왔다 가는 얼굴
때때로 만남은
그렇게 끝날 수도 있는 인연 이었고
이렇게 잊을 수도
있는 서로 였음에
제자리
소용돌다가
물살짓는 그런 바람
네 하늘 내 하늘은 교차로도 없는 들녘
인연의 연줄에 얽혀
잠시 회오리다가
제갈래
찾아 떠나는
노을 짙은 아픈 사랑
싱그런 네 눈빛이 깨어나는 계절이면
공간을 풀풀 날아
가물대는 하얀 나비
바람손
가지끝에 걸고
개벽하여 눈을 뜬다
눈 내리는 밤
황혼이 주는 아늑함과
밤이 주는 친밀감 속
그대 함께 걷고 싶어
밤새 눈이 내리는 길
마음도 촉촉이 젖어
눈꽃으로 피고 싶어
우리들의 발자국도
하나 둘씩 덮여 가고
온 길을 돌아보면
까마득히 먼 길일 때
눈처럼 녹아들고 싶어
깊고 그윽한 그대 심연
설야
가슴과 가슴 사이
달무리가 번져 가면
도시는 잠 못든 짐승
광란처럼 일어서고
타다만
촛불 둘레로
너울대며 앉는 대지
겨울성 가장자리
성가퀴로 돋아나면
그 높은 새둥지에도
등불 하나 걸리고
팔팔팔
끓는 백비탕에
녹아드는 한 생애
대흥사 부처님께 한 고백
대흥사 그 그윽한 골짜기와 동백숲에선
사철 바람이 불어 가끔은 때묻은 머릿결도
씻겨주고 또 가끔은 옷자락 마음자락까지
펄럭여 주기도 했지
손가락 가락에도 묻어나던 물향기, 구름향기,
진솔향기, 말짱한 사랑향기
청신암 맑은 약수에다 마음을 깔아 두고
부처님께 고백을 했네
"허무하고 허무하고 허무하나이다
피고 피고 또 피는 이 마음이나
지고 지고 또 지는 님의 마음이"
천불전 낡은 싸리비엔 한겨울이 쓸리네
순수와 화해의 시학
-김민정론
이지엽 (시인, 경기대학교 교수)
1. 순수의 이미지스트
김민정 시인은 이미지스트다. 대부분의 이미지스트가 그러하듯이 김 시인의 시 세계는 순수하고 아름답다. 이번의 새 시조집『지상의 꿈』에는 편편마다 시각적․ 청각적 이미지와 자연친화적이고 부드러운 비유를 통하여 순수의 정점에 도달하고자 하는 시인의 희원이 잘 형상화 되고 있다.
하르르 무늬바람
하르르 무늬물결
그대 향기 하도 짙어
숨이 막혀 오는 날은
속눈썹 타들어가며
불 지피는 나의 연가
-「음악을 위하여」부분
물결소리 바람소리
산새소리 들려오고
내 사유의 뜨락에도
하얀 달빛 밤새 내리는
오, 푸른
종소리 같은
그대편지 오실까
-「가을편지 」부분
「음악을 위하여」나, 「가을편지」는 그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음악을 위하여」에는 “하르르”의 의태어가 바람이나 물결의 부드러움을 형상화 시키는데 일조를 하고 있다. “무늬바람”이나 “무늬물결”은 얼마나 아름다운 단어인가. 바람이나 물결이 무늬를 이루면서 “하르르” 다가오는데 시인은 이 풍경을 통해 그대의 “향기”를 느끼며 숨까지 막히고 종국에는 눈썹까지 타들어가고 있다. 시각이 후각으로, 후각이 다시 촉각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 시는 철저하게 이미지를 통해 서정자아의 심리 상태를 그려내고 있는 셈이다. 「가을편지」는 어떠한가. 이 작품은 물결과 바람과 산새의 청각적 이미지와 “하얀 달빛”의 시각적 이미지가 접합되면서 “푸른 종소리 같은 그대편지”의 청각적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미지는 종류나 표현에 따라 그 느낌이 다르기 마련인데 김 시인의 시에서는 자연 친화적이고 부드러운 느낌이 지배적이다. 이에 대한 이유는 우리가 살펴보아야할 문제 중 하나지만 이미지로만 국한해보자면 청각이나 촉각 등 다른 이미지보다는 시각적 이미지가 지배적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는 점과 무관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그리움의 빛깔은」에는 “눈부시게/ 쏟아지는/저 무량의 가을 햇살”과 “나비처럼/팔랑이는/저 노오란 은행잎”, “불처럼/타오르고 있는/저 빠알간 단풍잎” 이라고 하여 모든 시적 대상이 회화적으로 그려져 있다. 김 시인은 거의 대부분의 작품에서 이미지나 비유의 묘사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다.
하이얀/그리움의 피돌기/순교의 절창이 빛난다 (「눈사람」)
수련보다 더 고운/아련한,/연분홍 그리움이라는 걸 알았습니다(「연꽃 만나러 가는 길 1 」)
푸르른 하늘을 향해/싱싱한 꽃대궁을 밀어올리는 (「연꽃 만나러 가는 길 1」)
잔잔한 수면을 향해/힘차게 솟아오르는 푸른 잎과 (「연꽃 만나러 가는 길 2」)
보드라운/느티 속잎/푸드득 날개 펴면//저것 봐/저것 좀 봐/천지간의 초록 물결//생명 그,/만발하는 무지개/분수처럼 솟구치는(「남산의 봄」)
하늘하늘/ 아지랑이/온 서울을 휘감더니---연초록/고운 바람이/사운대고 있잖아 (「남산의 봄」)
남해 통영/달아 공원/이른 봄의/청매 향기 (「남해 봄빛」)
촉촉이/양수 터트려/푸른 봄을 낳고 있다 (「봄비 2」)
보오얀/꿈을 꾸는/아가의/솜털 같은//고요한/햇살 속에/터지는/초록 함성//팽팽히/부풀어 오르는 (「오, 눈부신」)
우체국 앞 하얀 목련/이영도를 닮았을까//푸른 말/울음소리에/노을이 또 타고 있다 (「유치환론-靑馬거리」)
잣나무 가지 끝의 푸름으로 일렁이며 ---별빛 담은 눈빛들이 싱싱한 풀빛들이 (「진달래 필 무렵이면」)
그리운 /그대 얼굴 같은/강변 하얀 갈대꽃 (「작별의 한때」)
물감처럼/풀어놓은//연보라빛/그리움이//송이송이/등 밝히고 (「등꽃 피는 날」)
맑고 깊게/울리는/선율처럼/부드럽다//익을수록 의연해져/스스로 둥글어져(「가을 박」)
맑고 환한/얼굴의/형형한 가을 눈빛//투명히/피어오르는/저/눈부신 사랑 (「사루비아」)
여기에 인용하지 않은 작품도 상당수에 이른다. 문제적 작품이라 할 수 있는 다음의 작품에서 시인의 의도는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저 길 을
따
라
서
가 을 이
오고 있다
저 길 을
따
라
서
가 을 이
가고 있다
오 가 는
길
은
하
나
다
시 간 들 이
다 를 뿐
-「저 길을 따라서」전문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포말리즘의 기법도 시인이 얼마나 이미지를 중시여기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예에 속한다. 물론 이 형태를 통해 시인은 “저 길”의 모습을 독자들에게 시각적으로 보이고자 했을 것이다. “저 길”은 구불구불 하지만 그 길로 가을은 또 오고 가고 있다. 가고 오는 길은 시인은 “하나”라고 말한다. “시간”들이 다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여기서 “길”은 시간을 초월하여 영원한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은 이 “길”의 존재를 찾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시인은 이미지스트이기 때문에 이 영원한 길에 대해 욕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냥 보여줄 뿐이다. 보여주는 것으로써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한다. 그러기에 시인은 “영혼의/젖은 음색/갈피갈피 부리면서//추억처럼/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리는 밤//기다림/등불을 켜고/만리 밖을 비추네//”(「가을비 내리는 밤」부분)에서 보듯 청각적인 요소도 시각적 요소로 바꾸어 서정자아의 심경을 투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이미지스트들은 대부분 생의 색깔에만 관심을 두고 깊이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살아가는 일이 어찌 보이는 것에만 있겠는가. 가슴 저미는 아픔과 고통과 고뇌가 드문드문 동반되는 것이 인생이 아니던가. 김민정 시인은 이미지스트이면서도 이 점에 대해 분명한 인식을 하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다음의 작품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겨울성 가장자리
성가퀴로 돋아나면
그 높은 새둥지에도
등불 하나 걸리고
팔팔팔
끓는 백비탕에
녹아드는 한 생애
-「설야」부분
은은히 울리면서
빛이 되어 흐르는
천년보다 더 긴 세월
영혼의 기침소리
가파른
생의 계단을
이 밤 누가 오르는가
-「종」부분
이 작품들 역시 이미지 중심의 시이긴 하지만 단순히 이미지로만 설명할 수 없는 깊이가 느껴진다. 그 점은 어디에서 연유하고 있는가.「설야」를 먼저 검토해보면 이 작품 역시 초장과 중장은 다른 작품과 같이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다. 겨울 “높은 새둥지”에 “등불 하나”를 내거는 모습이니 쉽게 그림을 그릴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문제는 바로 다음이다. “팔팔팔/끓는 백비탕에 /녹아드는 한 생애”에서 이 시는 의미심장하게 바뀐다. “팔팔팔/끓는 백비탕”이라고 눈 오는 밤을 묘사한 새로움도 새로움이지만, 여기까지 형상화된 이미지를 일시에 “녹아드는 한 생애”로 바꾸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시의 표현기법을 이미지 중심에서 인생관 중심의 주제로 옮아왔기 때문이다. 이 점을 유념하고 「종」이란 작품을 보면 이 작품의 깊이가 어디에서 연유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시 역시 초․ 중장에서 형상화된 시각적 이미지 (“빛”)와 청각적 이미지(“영혼의 기침소리”)를 인생관 중심의 주제의식(“가파른 생의 계단”)으로 환치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들 작품들은 김 시인의 시가 앞으로 변모를 모색하는 증거로 보아도 좋을 듯싶다.
2. 화해의 시학
앞서 우리는 김 시인의 작품세계가 자연친화적이고 부드러운 세계를 형상화 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는 자아 밖의 세계를 대결과 긴장으로 인식하지 않고 화해를 추구하는 정신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실제의 작품을 통해 이것이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 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기다리던
꽃소식에
마음이 온통 달아
찻잔으로
가는 손길
그도 한참 뜨겁더니
비로소
꽃 한 송이가
내 안에서 벙근다
-「기다리는 마음」전문
비울 것 다 비워낸 가벼운 몸짓으로
가지 사이 이는 바람
그도 모두 보내놓고
비로소
맑은 하늘 한 장
펼쳐드는
저 선사(禪師)
「지상의 꿈-용문사 겨울은행」전문
주지하는 바와 같이 서정시의 가장 큰 장르적 특성은 동일화의 원리를 추구하고 있다는데 있다. 인용한 이 작품들은 이 동일화의 원리를 잘 수용하고 있다. 「기다리는 마음」에는 동일화의 방법 중 ‘동화’의 기법이 「지상의 꿈-용문사 겨울은행」의 작품에서는 ‘투사’의 기법이 쓰이고 있는 것이다. 동화는 자아 밖의 세계가 자아로 들어오는 것이고, 투사는 자아가 세계 속으로 투영되는 것이니, 자아와 세계는 한 몸이 되는 것이다. ‘투사’든 ‘동화’든 동일화의 기법은 근본적으로 세계와의 화해를 모색하기 마련이다. 이 시인의 작품이 전반적으로 따뜻하고 부드럽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여기에서 연유하고 있다.
긴장과 대결의 현실인식이 그러면 김 시인의 시에는 과연 없는 것인가. 그러나 그렇지 않다. 김 시인의 시에는 고독과 그리움의 공간이 자리 잡고 있다. 언뜻 보기에는 이 두 개의 공간은 엇비슷하게 보이지만 김 시인의 작품에서는 이 두 공간이 상당히 상반된 모습으로 형상화 되고 있다. 말하자면 김 시인이 추구하는 화해의 시학으로 나아가는 과정들이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먼저 고독의 공간을 보기로 하자. 김 시인에게 고독의 의미는 「파도 」「정동진에서」파도 등의 이미지로 육화되고 있다. 「파도」에서는 “발돋움하다/발돋움하다/혼자 가만 불러보는//철썩이다/철썩이다/아픔으로 피멍드는//그리운/이름 하나를/끝내 묻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그리움의 대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고독은 자신으로부터 치밀어 오른 것이라기보다 외부 세계로 오는 요인이 더 크다고 생각된다. 이를테면「어떤 실직」에서 보듯 현실은 “선술집/유리창에/희미하게 번져나는/질펀한/생의 우수”이거나, “갈 곳 없는/시간들”이기 때문이다.「올가」에서는 그렇기 때문에 “무책임한 인재 앞에/해해마다 겪는 난리”를
그의 눈빛 스쳐간 자리
참혹해라 아, 몰골
둥둥둥 황토수 위를
떠다니는 저, 주검
으로 끔찍하게 재현해내기도 한다. 「평화의 댐 가는 길」에서는 6.25 때 전사한 수만의 젊은이들의 아픔을 대변하기도 한다.「서울의 밤」에서는 “거대한/바퀴를 달고/굴러가는/서울, 밤”을 읽어내기도 한다. 그의 현실인식은 이처럼 진실 쪽에 서있다. 그렇다고 해서 강도 높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비판하지는 않는다. 오히려「고독의 순도」에서 보듯 고독의 절정과 빛깔과 침묵의 “그 뜨거운 파문”에 가 닿고자 하는 시인의 열원을 읽을 수 있다.
다른 한편 그리움의 공간은 대개 가족사와 유년에 대한 경도로 이어지는데 「영동선 철로변에」의 연작이나 「꽃피는 봄날에」등의 작품에서 형상화되고 있다. 「어린 날의 동화 」에서는 “내 유년의 뜰 안을 재재대던 어린 새떼”의 이미지로 나타나기도 하고 “싹 틔울 눈 키워가는/겨울나무 벗하면서/빛나는/미래를 꿈꾸는” 산정호수 (「산정호수」)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그리움의 공간에 놓인 작품들은 진실보다는 감성에 가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고독과 그리움의 상반된 의식을 통하여 시인이 이르고자하는 종착지는 어디일까.
푸른 꿈을 꿀 자유와
싱그러운 자존 위해
파아란 하늘 받친 숲 속의 나무처럼
튼튼한 뼈대 하나를 마음속에 세운다
제각각의 속도와
제각각의 방향으로
튕겨지고 달아나는 우리들의 삶이지만
희망은 망각 속에서 새눈 뜨는 초록별
-「뼈대를 세우다」전문
“튼튼한 뼈대 하나를 마음속에 세”우며 “망각 속에서 새눈 뜨는 초록별”에서 우리는 시인의 문학적 지향점이 어느 곳인지를 감지해낼 수 있다. 그곳은 “귀뚜라미 울음소리”에도 “생이 반짝 빛”(「귀뚜라미 내 가슴에 울다」 )나고 있는 세계며 ,「낙엽이 지다」에서의 “아, 다시//몇 번의 노래로//흔들리며 서는 언덕” 이다. 삶에 대한 고뇌와 뉘우침과 한숨과 망설임 속에서도 시인은 희망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 공간은 곧 사랑의 공간이다. ‘달’과 ‘별’이 빛나고 ‘꽃’과‘ ’새’가 있는 행복의 공간이다. (「행복의 나라」) 동시에 “다사로운 하늬햇살/싱그러운 하늬구름”의 빛나는 공간이며 (「푸른 신호등」), 푸른색의 이미지가 지배하는 공간이다. 「음악을 위하여」에서는 “슬픔이 퐁당퐁당 /그대 늪에 던져질 때//그대 안에 자라나는/아, 푸르른 그리움//어둠을 밝히는 고요/깊은 그대 삶의 탄주”로 나타난다. 같은 그리움이라도 이것은 동화적인 세계나 가족사적인 그리움의 세계가 아니다. “비 내려도/바람 불어도/꺼지지 않을/불씨 되어//언제든 어디서든/그대 향해 활활 타오를 //가슴”을 가지고 있으며 그 가슴에 “불잉걸 하나/간직하”려 (「불꽃이고 싶은」) 애쓰는 화해의 공간이다.
이 공간에 도달하기 위해 시인은 자신에 대한 존재를 가볍게 하려고 노력한다. 사랑의 무게를 측량해보는 「존재의 가벼움-사랑의 무게」에서는
별이 되어
반짝이는
기다림조차
날개를 단다
제 무게를
털어내는
장자(壯子) 꿈 속
나비처럼
가볍게
날아오른다
우화등선을
꿈꾼다
“우화등선”을 꿈꾸는 가벼움을 추구하고 있다. 욕심이 없다. 세계와의 대결은 어느 곳에서 생기는가. 욕망의 충돌에서 생긴다. 욕심이 없는데 어떻게 대결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시인은 “끊임없이 반복되는/출렁이는 삶의 무늬/물결에/지치지 않는/씻고 씻긴 삶”을 지향하며, “테 두르지 않아 좋은/마음 조릴 것도 없는/낯익어 향수 같은/투명한 저녁노을/그렇게/하루를 닫는/조용한 삶”(「가을에는」)이기를 간구하고 있다. 그러니 염려할 필요가 없다.
시인의 말에 나타나 있듯 김민정 시인의 시가 “生으로의 긴 긴 여행”을 지나와 “천 년을 넘나드는 저 깊은 바람을 뚫고” “휘파람 불며” 이 세상을 건너갈 수 있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의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김민정 시인의 작품세계는 순수의 이미지스트라고 할 만큼 감각적이다. 동시에 외부세계를 인식하는데 있어 대결과 투쟁보다는 부드럽게 바라보며 그것을 시인의 가슴에 품거나, 외부 대상에 육화시키는 자연 친화적인 화해의 시학을 구축하고 있다. 이러한 시인의 시적 특성을 계속적으로 이어가면서 「설야」나, 「종」 등의 작품에서 보여주고 있는 때로 문득 다가서는 생의 아픔이나 고뇌에도 그 부드러움을 얹어내는 좋은 시인으로 우리에게 남아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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