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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의 달인 - 김민정 시인론 (정완영, 시조시인)

시조시인 김민정 2022. 9. 11. 23:27

시조의 달인達人

 

백수 정완영(白水 鄭椀永)

 

 

신년乙酉 벽두, 오는 봄을 어떻게 가늠하나? 하고 눈을 감고 앉았는데 느닷없이 김민정金珉廷시인이 찾아와서 원고뭉치를 내밀면서 시집을 내겠으니 서문을 써 달라는 소청이 아닌가.

 

내가 이런 청탁에서 손을 뗀 지도 오래 됐고, 또 요즘 시인詩人이라는 사람들이 당선이니 추천이니 받은 지 사흘만 되어도 머릿말이니 시인의 말이니 하여 자서自序를 부치기가 일쑤인 세상에서,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어 그만 둘까하다가 요즘 세상에서 이 시인만큼 숫된 사람도 드물거니와 이 시인이 백수론白水論을 써서 박사학위를 받은 문연文緣도 있고 해서, 몇 자 서문 아닌 소감을 얹기로 했다.

 

기다리던

꽃소식에

마음이 온통 달아

 

찻잔으로

가는 손길

그도 한참 뜨겁더니

 

비로소

꽃 한 송이가

내 안에서 벙근다

- 기다리는 마음전문

 

시란 말 바깥의 말, 언외언(言外言)이다. 어떤 사상事像이거나 어떤 상황狀況만 보여주면 될 뿐, 중언부언해서는 안 된다. 시는 하나의 제시(提示)’일뿐, 그것을 판독判讀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시가 해야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이 시인은 잘 알고 있다.

 

꽃잎과

꽃잎으로

바람에 떨리우다가

 

불씨 묻은

재처럼

따뜻한 미련이다가

 

파문만

사름사름 앉는

깨지 못할 꿈이다가

- 어떤 만남전문

 

시를 하는 데 있어서 두 번째 요건은 바깥은 서늘하고, 속은 뜨거워야 한다는 말씀인데, 다시 말해서 재를 헤집다가 불씨에 손을 데는 듯 놀라움을 만나야 된다는 이야기인데, /불씨 묻은 재처럼 따뜻한 미련이다가/ 이 중장은 시조인時調人의 경구警句, 불씨일시 분명하다.

 

청산을

넘지 못해

물소리로

우는 강물,

 

강물을

건너지 못해

바람소리

우는 저 산

 

아득히

깊고도 푸른 정

한 세월을 삽니다

- 어라연 계곡전문

 

이 작품은 시인 김민정의 절창絶唱, 그의 시의 절정絶頂이다. 시가 여기 와서는 더할 말을 잊는다. 보여주는 경개景槪에다가, 이기지 못하는 차탄蹉嘆에다가, 들려오는 물소리까지 어우러져 한 폭의 장관을 이룬다. 누가 그린 실경산수가 이만하다 할 수 있겠는가? 진실로의 가품佳品이다.

 

아버지가 웃으시며

영동선을 가고 있다

 

가난도 햇살인양

눈부시게 받아 입고

 

물푸레

나뭇잎처럼

휘적휘적 가고 있다

- 가난도 햇살인양 - 영동선의 긴 봄날 4전문

 

어쩌면 이 한 수 단시조로 아버지가 걸어온 인생살이 뒷모습을 이렇게도 절실하게 그려낼 수 있었는가. 어버이에의 지정至情이 염의染衣처럼 가슴속에 묻어난다.

 

김민정은 강원도인江原道人, 강원도는 산도山道, 강원도에서 시조의 달인達人

한 사람 나와 주기를 간구懇求하는 마음에서 두어 자 무사蕪辭로 서에 대한다.

 

2005,

노백 정완영 지 (老白 鄭椀永 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