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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회 나래시조문학상 심사평/ 길.4 <추창호>

시조시인 김민정 2022. 5. 18. 07:35

·4

 

추창호

 

여기서 저기까지 멀고도 가까운 길

그대와 손에 손잡고 유쾌하게 걸어간다

길들이 펼쳐낸 얘기 귀도 기울이면서

 

그러다 문득명치 끝 아려오는 생각 하나

블랙홀 속으로 너와 내가 사라진다면

둘이서 걷던 이 길을 누가 기억할 것인가

 

그래도 인생은 살만한 무엇인 거

한 소절 노래가 모여 음악이 된다는 걸

저 길섶 풀꽃은 알고 또 꽃을 피우는 게다

 

 

 

 

 

 

 

 

 

 

 

 

 

 

 

 

 

 

 

 

 

<31회 나래시조문학상 심사평>

 

인생은 살만한 것

 

김민정(한국문협 시조분과회장, 문학박사)

 

  <길.4>로 제31회 나래시조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추창호시인께 축하를 보냅니다. 이번 본심 심사는 김선호김민정김윤숭손증호이승현 맡게 되었습니다. 초천에서 들어온 10편의 작품 중에서 이 작품을 선정했습니다. 추창호시인님은 좀 더 진작에 이 상을 받으셔야 했는데, 조금 늦은감이 있다는 것이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작품주제는 우리의 인생길에 대한 것입니다. 즉 인생은 살만한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인생길은 정해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모두가 다릅니다. 화자는 여기서 저기까지 멀고도 가까운 길이라고 합니다. 100세 시대라고 해서 100년을 산다고 해도 어찌 보면 멀고, 어찌 보면 가까운 길입니다. 그 길을 그대와 손잡고 유쾌하게 걸어갈 수 있다면, 또 길들이 펼쳐낸 얘기에 귀도 기울이면서 화자는 즐겁게 걸어갑니다. 첫수에서는 즐겁게 유쾌하게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러다 문득, 명치끝 아려오는 생각이 있습니다. 이렇게 걷다가 어느 날 문득 블랙홀 속으로 너와 내가 사라진다면하고 상상하면 인생은 얼마나 허망한 것일까요. ‘둘이서 걷던 이 길을 누가 기억할 것인가아들과 친지들이 기억할까요? 그들도 끝내는 사라진다면그렇게 생각하면 인생은 한없이 허무하게 느껴입니다.

그러나 셋째 수에 오면 화자는 그래도 인생은 살만한 무엇인 거라며 인생이 허망하지만은 않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작은 한 소절이 모여 음악이 된다는 걸저 길섶의 풀꽃은 알고 또 꼿을 피우는 게다고 그 이치를 알기에 저마다 절망하지 않고, 허망해하지 않고 꽃을 피우는 거라고 합니다. 인생은 허망하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허망하지만 그래도 자손을 퍼뜨리고 삶으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며, 사는 동안은 최선을 다하듯 꽃들도 그들의 사명을 다해 길섶에서도 꽃을 피우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 사람의 생은 허망할 수도 있지만, 계속해서 자손을 퍼뜨리고, 그렇게 이어져서 인류의 역사를 이루고 꽃들도 번식하여 그 꽃을 계속 피울 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생명을 가진 것들의 예외 없는 삶의 모습이며, 소박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가치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 작품은 정반합의 변증법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 수에서는 긍정적인 삶의 모습을 보이고 둘째 수에서는 부정적인 삶의 모습이었다가 셋째 수에서는 긍정과 부정을 모두 받아들여 더 큰 하나로 아우르며 긍정적인 생각으로 작품을 끝내고 있습니다.

31회 나래시조문학상을 받으시는 추창호시인님! 다시 한 번 수상을 축하드리며 앞으로 더 좋은 작품 쓰시어 문운 더욱 빛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