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연못 시비 - 이인환의 '호반의 여정' 소설 속에 소개 (펜문학 2014. 9~10월호)
호반의 여정 / 이인환
산들바람은 덕진연못 연꽃군락지에서 물안개처럼 솟아올라 꽃향기를 한 아름 안고 연화교 앞에 서 있는 사라에게 다가와서 그녀의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그윽한 향기를 내뿜는다.
바람은 다시 연화교를 지나서 호수 위에 잔잔한 파도를 일으키며 물 주름을 만들며 넓은 부챗살 모양으로 퍼져나간다. 그 때 그가 다가오며 말을 한다.
“사라, 뭘 그렇게 생각 해?”
이현은 휴게실에서 캔커피를 양손에 들고 다가와서 그녀에게 주면서 말을 한다.
“고마워!”
그녀는 피식 웃으면서도 시선은 연꽃군락지에 가 있다. 그들은 커피를 마시며 덕진호수의 연화교 입구에 들어선다. 전주 덕진연꽃축제는 매년 7월에 열리며 이 때가 연꽃축제의 기간이다.
그들은 손에 손을 잡고 연화교의 교각기둥을 하나씩 지나친다. 그녀의 길게 늘어트린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부끼며 현의 어깨를 스치곤 한다. 마치 말꼬리가 말의 마음을 표시하는 것 같다.
연화교를 산책하고 있는 그들의 마주 잡은 손은 마음과 마음의 교감을 느끼게 하며 자연 속 연꽃에 흠뻑 젖어 간다.
이곳 덕진공원의 위치는 전주역 북쪽 3키로 미터 지점의 유원지로 저 멀리 고려 때 만들어진 연못이다. 연못의 크기는 약 10만 평방미터나 되고 전주팔경의 하나이기도 하다.
여름이 되면 연못 절반이 연꽃잎들로 뒤덮여져서 초록의 세계로 변한다. 그리고 연못 중앙에는 아치형 연화교(현수교)가 이 공원의 아름다운 자태를 더욱 빛나게 하고 있다.
연화교를 중심으로 양 갈래로 쪼개진 호수 남쪽은 연꽃 자생지이고, 북쪽은 호수로 만들어져서 보트를 즐길 수가 있다. 그들이 연화교의 가운데 즈음 걸어가니 거기에는 ‘연화정’이라 일컫는 커다란 정자나무가 우뚝 서 있다.
그 밖에도 동물원을 비롯해서 각종 위락시설들이 들어서 있다. 그리고 공원의 야외공연장에서는 수시로 다양한 공연도 한다. 관광객들의 볼거리가 많다. 그외 유적비로 신석정시비, 김해강시비, 전봉준장군석상 등 석조기념물들이 조성돼 있다.
그들은 연꽃축제가 한참 진행되고 있는 연화교를 거닐면서도 시선을 서로의 눈빛에 두었다. 마침내 그는 침묵을 깨고 말을 한다.
“사라의 고향이 여기라면서?”
“네!”
“고도의 공주님이시네?”
“·······.”
그들은 연화교 가운데 즈음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그는 사라와 연꽃잎 그리고 연화교를 넣은 배경을 넣어서 카메라의 셔터를 계속 눌러댄다. 사라를 캐릭터로 해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였다.
그들의 인연은, 언론사의 순환근무제로 서울본사에서 함께 근무를 하다가 연초에 몇 명이 전주지사로 내려올 때 함께 내려오게 된 것이 운명의 시작이라고나 할까?
“난, 사라가 서울인 줄만 알았는데 여기 와서 알았어.”
그녀는 이제 사실대로 말을 해 주고 싶었다.
“실은 내가 서울 말 배우는데 남 몰래 노력을 많이 했어요. 아나운서가 되기 위 해서는 일상생활에서도 서울말을 써야했으니까요, 특히 전라도 사투리는 내가 말 해놓고도 듣기가 별로였거든요. 그래서 고3때 부모님은 날 더러 전주에서 의대를 가라고 하셨는데 난, 아나운서가 꼭 돼야 한다면서 서울 유학을 고수 했어요. 그 리고 선생님은 원서를 써 주시면서 신방과 보다는 국문과를 전공하면서 부전공으 로 신방과를 공부하라고 하셨어요. 또한 언론인이 되려면 글을 잘 써야 하신댔어 요. 그래서 서울로 대학을 갔는데 운이 좋았다고나 할까, 뭐 그런 거 있잖아요.”
“그게 운인가? 공부를 잘했으니까, 명문대를 들어간 거지.”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을 잇는다.
“졸업할 무렵에는 문학지에 ‘시’로 등단도 했어요.”
“그래? 사라가 시인인줄은 정말 몰랐네, 축하해!”
그는 그녀의 그 말에 다시 한 번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연꽃군락지로 옮겨지며 말을 한다.
“덕진공원이 이렇게 멋있을 줄이야!”
그녀는 그가 보도사진기자라는 것을 떠올리면서 말을 한다.
“형은 사진기자니까, 그 저널리스트들의 퓰리쳐상에 도전해봐.”
퓰리쳐상은 사진가라면 누구나 호감을 가지고 있는 대상이다. 그가 그녀의 말을 듣고 말을 한다.
“그 상은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그려보는 꿈과 희망이지, 하 지만 퓰리쳐 상은 수상자를 미 언론사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기자로 한정을 하고 있어서.”
“몰랐네, 그렇구나.”
퓰리쳐상을 창설한 사람은 헝가리 출신 유대계 미국인으로 그는 19세기 미 최대 신문 뉴욕월드의 발행인이었다. 그는 또 컬럼비아대학에다가 저널리즘스쿨도 만들었다. 그리고 시상식은 매년 5월에 컬럼비아대학에서 열린다.
미국의 신문발행인이며 저널리스트였던 ‘조셉 퓰리쳐(JosephPulitzer 1847~1911)의 유언에 따라서 1917년에 창설 되었다. 퓰리쳐상은 저널리즘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러지고 있다. 그 대상으로 저널리즘, 드라마, 음악부문만 있었는데 사진부문은 1942년에 신설되었다.
그녀는 그의 그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그를 쳐다본다. 그들은 연화교를 건너서 호반의 오솔길로 들어선다. 태양은 어느새 노을빛을 맞이하고 있었다. 즐겁고 재밌는 하루의 시간들이 추억 속으로 쌓이며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들은 일상으로 되돌아갔다. 방송국 동선에서 부딪칠 때는 눈빛으로 인사를 나누곤 한다. 마음의 창문은 그들만이 열고 닫는다. 연초록의 계절이 진초록의 계절로 넘어갈 무렵의 주말을 맞이하여 그는 그녀에게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띄우는데·······.
사라는 방송실에서 정오뉴스를 마감하고, 아나운서 대기실에서 차를 마시면서 잠시 명상에 들어갔다. 그녀의 명상의 세계에서 항상 떠오르는 그림자, 역시나 그의 모습이었다. 사색의 세계에서도 그들은 함께 하고 있었다.
그 때, 책상 위에 놓여있는 스마트폰이 진동을 한다. 폰을 들어서 화면을 터치하니 노크 코드가 된다.
“사라공주, 지난번 연꽃축제는 정말 재밌게 잘 보았었고, 고마웠었어요. 사라와 함께 있으면 왜 그렇게 시간이 빨리 가는지 알 수가 없네! 이번 주말에는 전주시 내 고궁을 좀 탐방하고 싶은데 어때요?”
그가 보낸 문자메시지에 그녀도 그에게 짧은 응답을 보낸다.
“형, 알았어요!”
그의 스마트폰에도 응답메시지가 떴다. 그가 전주로 내려 온 지도 몇 달이 지났다. 그러나 전주 시내가 아직은 낯 설은 도시의 거리였다.
그는 주말을 맞이하여 그녀와 약속한 장소에 시간을 맞춰서 나갔다. 마치 취재하러 나가는 사진기자처럼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경기전 앞에 도착하여 사라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그녀가 미소를 띠우면서 저쪽에서 잰걸음으로 다가온다. 그녀의 콧잔등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있다. 그녀의 시선이 핑크빛으로 번지면서 여인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그가 반갑고 고마워서 말을 한다.
“쉬는 날, 미안해!”
“아냐, 나도 형을 본다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좋은 걸!”
“고마워!”
그들은 전주의 역사문화탐방에 나섰다. 그리고 그녀는 그에게 전주의 역사유적들을 문화관광해설사처럼, 그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며 안내를 하고 있다.
경기전(慶基殿은 보물 제931호)은 태종10년 1410년에 창건되었다. 그리고 그 후 세종24년 이전에는 어용전(이성계 영정)이라고 부르던 것을 경기전으로 이름을 개칭하였다.
전주 사고관에는 전주이씨 시조인 이한공의 위패도 봉인 돼있다. 그밖에도 조선왕조의 여러 종류의 실록들이 소장 돼 있다.
그리고 이곳에는 부속건물들로 마청, 어정 등 7개의 부속 건물들이 더 있다. 그리고 농경시대에 생활의 모습을 볼 수가 있는 생활기구인 디딤돌방아와 절구 등이 마련 돼 있다.
특히 경기전 입구에는 붉은 홍살문이 있는데 이것을 세운 유래를 살펴보면 망자의 위패를 모신 곳과 궁전, 그리고 관아 등 옛 사람들이 신성시하는 장소에 악귀를 몰아낸다는 관념적인 사고와 풍습이 담겨져 있다. 이러한 긴 역사의 흔적들을 볼 수가 있어서 좋았다.
또한 이곳은 전경이 좋아서 “광해”, “보통의 연애” 등 영화 촬영장으로도 각광을 받고 있는데 영상문화 발전에도 기여를 하고 있다.
그녀는 아나운서이면서도 마치 리포터인지, 전주문화해설사인지 모를 정도로 신바람이 나서 역사 선생님같이 설명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들이 경기전을 탐방하고 나니, 점심때가 되었다. 전주의 대표적 먹거리인 ‘전주비빔밥’으로 해결했다.
오후에는 ‘전주한옥마을’ 탐방에 나섰다. 전주한옥마을은 7백 동이 넘는다. 거기에는 한옥체험관을 비롯해서 공예품전시관과 전통술박물관 등이 있다.
그들은 최명희 문학관에 들어선다. 그러자 귀한 글귀가 시선을 끌어당긴다.
- 최명희 문학관『작품감상』
아름다운 자리
오래도록 향기
가득 하소서
햇빛 환한 날.
최명희 문학관을 관람하고, 마지막으로 전주전통술박물관으로 들어갔다. 주점 안에는 관광객 몇 사람이 앉아서 전통주,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그들도 주점으로 들어갔다. 주모가 그들을 맞이한다.
“어서 오세요”
그들은 2인용 둥근 식탁이 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그가 주문을 한다.
“여기, 막걸리 좀 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잠시 후에 주문한 막걸리가 옹기그릇에 담아져서 나오고, 안주로는 된장에 풋고추가 나왔다. 국자 대신 작고 예쁜 조롱박으로 옹지막걸리를 떠서 뚝배기술잔에 옮겨 담고 축배를 올리는데 그가 선창을 한다.
“자, 추억의 잔을!”
“···…, 위하여!”
행복한 코러스에 옆 사람들의 시선이 쏠린다. 그들은 함박웃음을 섞으며 술잔을 부딪친다.
‘이 술은 우리의 시너지!’
그는 그녀와 마주 앉아서 그녀의 시선에 눈을 떼어내지를 못한다. 그들은 이제 잠시만 안 보아도 어린아이가 엄마를 찾는 것 같이 보고 싶어졌다.
“오늘 사라의 안내로 전주시내 역사문화유산구경을 잘 했네. 그리고 역사공부도 많이 하고, 고마워!”
“난, 형과 함께 더 재밌었는 걸!”
그는 그녀와 함께 전주시내 고궁을 모두 탐방을 하고나니, 마치 내 고향 같은 생각이 들었다. 타향도 정이 들면 내 고향이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갔다. 사라는 그가 맛있는 딸기 먹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딸기농원을 가기로 생각하고, 그에게 말을 하기로 했다. 한 직장, 한 지붕 아래 있으면서도 보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그녀는 그를 만나면 놀러가기로 마음을 먹고 있는데 마침 휴게실 앞 동선에서 그를 만났다.
“형, 커피 했어?”
“아직이야”
“나도 아직 못했는데 한 잔 할까?”
“그래.”
그들은 휴게실로 들어갔다. 마침 오전 업무시간이라서 그런지 휴게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가 커피를 마시며 뜸을 들이다가 말을 한다.
“이번 일요일 우리 수원에 가자.”
“왜?”
“응, 수원 딸기 먹으러”
“그래 좋아”
자연산 딸기철은 원래 봄철이다. 지금은 과학농원화시대로 딸기생산이 사시사철 된다. 그래도 성숙기는 1월부터~6월까지다. 그래서 계절에 별 지장이 없이 생산이 되고 있는 것이다.
휴일을 맞이하여 그들은 전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수원행시외버스를 탔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갈 무렵에 수원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거기서 수원딸기농장까지는 택시를 이용했다.
잠시 후에 수원딸기농원 입구에 도착했다. 딸기의 달콤한 향이 후각을 자극한다. 냄새만 맡아도 침이 저절로 넘어가는 것 같았다. 딸기농원 주인이 그들을 맞이한다.
“손님, 어서 오세요.”
“네, 안녕하세요. 저희들은 전주에서 왔습니다. 이 댁 딸기 맛이 좋다고 해서 일 부러 찾아왔습니다.”
“그러셨어요, 고맙습니다.”
그들은 주인의 안내를 받아가며 딸기농원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주인으로부터 딸기잼을 만드는 프로그램과 쟁반크기만한 원형대나무 소쿠리를 받아가지고 딸기밭으로 들어갔다.
딸기밭주위에는 동백나무, 향나무, 주목나무 등 상록수들이 울타리다. 나무들이 딸기밭을 감싸고 있었다. 자연과 나무숲속의 딸기농원은 자연그대로 아름답고 수려하다.
그들은 딸기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딸기밭 속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딸기를 미니 대소쿠리에 가득 따서 담아가지고 수도가 있는 곳으로 가서 수전을 틀어서 딸기를 씻는다.
이곳 지하수는 지하 120미터의 깊은 암반에서 펌프로 끌어올린 청정수이다. 손에 물만 묻어도 시원하다. 씻은 딸기를 소쿠리에 담아서 등나무 넝쿨이 어우러진 쉼터로 갔다.
거기에는 1미터 크기의 통나무를 잘라서 만든 식탁과 통나무를 반 쪼갠 의자가 마련되어 있었다. 마치 깊은 산사의 뜰에 모습이다. 수풀에서는 매미와 새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고, 하늘에서는 제비들이 곡예비행을 하고 있었다.
그런가하면 작은 벌들은 딸기밭을 쉴 새 없이 누비며 열심히 일을 하느라고 이마에서는 땀이 뻘뻘 흐르고 있었다.
이곳 딸기농원 뜰에 있으니 마치 구름위에 앉아 있는 기분이다. 그는 딸기꼭지를 잡아서 그녀의 입에다 살짝 넣어준다.
‘아! 저 예쁜 입술!’
보는 사람이 없으면 마음을 표시하고 싶었다. 관능적인 그 입술을·······! 신경의 여울까지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녀의 부끄러워하는 표정을 보면서 그는 순간의 행복을 느낀다.
자연의 쉼터에서 신선한 친환경딸기를 따서 직접 먹어 보는 맛이란 현장 체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아니면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딸기를 따서 딸기와 설탕을 교반해서 병에 담아 놓으면 자연 숙성 돼서 딸기잼이 완성 되는 가공체험도 해본다.
“난, 오늘 처음으로 딸기잼을 만들어봤네.”
“형, 나도야~”
그들은 입속을 다 내보이며 환하게 웃어댔다. 자연과 함께 오래오래 딸기농원에서 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언론매체에서 바쁘게 일을 하다 보니 몇 달이 훌쩍 또 지나갔다. 그들이 수원딸기농원을 탐방한 이후 계절이 바꿔지며 어느새 벼들이 누렇게 익어가는 가을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들은 1박2일 코스용 주말여행 길에 올랐다. 전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아침 아홉시에 출발하는 태백행 시외버스에 승차했다. 버스는 달리고 달렸지만 정오 즈음에서야 태백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태백의 유서 깊은 ‘구문소’는 한반도의 초기인 6억 년 전에 탄생했다. 그러니까 구문소는 고대의 비밀을 가지고 자연환경 속에서 개화되어가는 과정에서 빗물과 함께 흐르는 물살이 반복 되면서 지반이 깎여 ‘낙수 물이 반석을 뚫는다’는 말과 같이 끊임없이 흐르는 물에 깊은 골이 생기고 물줄기는 결국 산을 무너뜨리는 작용을 계속하면서 생성되었다. 이것은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자연상태의 모습(천연기념물 제417호)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태백지역에는 이러한 산들이 많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있듯이 그들은 시장기를 해결코자 터미널 근처 식당으로 들어갔다. 비빔밥이라면 ‘전주비빔밥’인데, 태백에 와서 강원도의 비빔밥인 ‘곤드레 비빔밥’을 먹을 기회를 갖게 되니, 입맛으로 판가름을 해야 할 비빔밥경쟁을 하는 기분이 다 들었다. 하지만 미식가가 아니니 알 수가 있을까?
그들은 태백시외버스터미널에서 걸어서 ‘황지공원’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세시경이었다. 황지연못은 태백시 중심부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태백시 주민들에게는 산책길로도 안성맞춤이다.
이처럼 좋은 고장에서 사는 것도 어쩌면 큰 행복이 아닌가 싶다. 황지연못은 그 둘레가 일백 미터가 넘고 상지, 중지, 하지에서 용출하고 있는 물이 하루에 무려 5천 톤이 넘는다고 한다.
태백시에는 두 개 강의 근원지가 있으니 하나는 검룡소로 한강(남한강)의 발원지이고, 하나는 황지연못으로 낙동강의 발원지이다. 한강은 굽이굽이 흘러가서 강원도는 물론이고, 수도 서울시민의 음용수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북한강과 남한강주변에 많은 농토에 물을 공급하여 비옥한 농작물을 생산하게 하고 있는 근원이기도 하다.
또한 낙동강의 발원지인 황지연못의 물은 경상도를 거쳐서 부산사람들까지 마시고 있다. 그래서 태백에서 나오는 두 줄기의 물은 태고로부터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고, 현재에서 미래로의 우리 민족의 생명수이니, 이 얼마나 고마운 물이 아니던가. 세계 사대문명 발생지를 봐도 모두가 큰 강을 끼고 있지를 않은가. 우리나라의 쌀 생산지인 영남평야에 비옥한 곡창지대를 만들어 준 것도 바로 이곳에서 공급하고 있는 물이 아니었으면 있을 수가 없다.
“형, 이렇게 좋은 곳을 어떻게 알았어?”
“내, 사라하고 가을여행을 동해바다로 가겠다고 생각해 두었었지. 난 사실 황지공 원이 역사문화의 고장인 줄을 몰랐어!”
“형, 덕분에 좋은 구경 다 하네.”
“그래, 고맙다!”
그들은 말은 하고 있지만, 마음은 정담을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눈빛은 황지공원에 가 있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신혼여행중인 원앙 한 쌍처럼 보였다. 황지연못의 이모저모를 모두 다 탐방한 후에 기차를 타기 위해서 다시 추전역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얘기를 하며 걷다보니, 어느새 추전역에 도착했다. 역, 광장 한가운데에는 상징탑이 우뚝 서있다. 그리고 그 상징탑을 마주보며 좌와 우측에는 커다란 ‘시비’가 간격을 두고 나란히 서 있다.
“언제 시비가 건립되었지?”
그녀가 의아하다는 듯이 그를 쳐다보며 말을 한다.
“글쎄, 다니면서 시비를 보았지만, 이처럼 크고 멋있게 잘 건립된 시비는 처음 보 는데…….”
추전역을 상징하고 있는 상징탑 앞에는 김민정 시인과 또 한 시인의 시비가 나란히 우뚝 서 있다. 우리 문화유산을 보존하며 지키고 있는 동해바다의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강원도의 추전역은 우리나라 기차역 중에서『해발:855미터』제일 높은 기차역이다. 이 곳 추전역 광장에 세워진 ‘시조비’ 건립은 (2014년 4월 11일) 한국철도공사와 태백시의 합작으로 건립되었다.
우리나라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을 생각하니 자랑스럽기 한이 없다. 이처럼 우리나라 시인들의 ‘시비’가 나라 방방 곳곳에 많이 세워졌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것이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희망이다.
그들은 시비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후에 시비 앞에 서서 시문을 읽어내려 가고 있는데·······.
옛날에 황지에는
황부자가 살았었지
구두쇠로 소문났던
어느 날의 황부자는
시주 온
스님 바랑에
쇠똥 담아 주었단다.
아기 업은 며느리가
시아버지 몰래몰래
쇠똥을 쏟아내고
쌀을 담아 주었더니
스님은
며느리에게
고맙다며 일렀단다.
지금 당장 집 떠나서
가능하면 멀리 가라
큰 소리가 나더라도
돌아보지 절대 마라
십 리쯤
걸어갔을 때
벼락 소리 들렸단다.
놀랍고 궁금해져
뒤돌아본 며느리는
그 순간 그 자리에
돌이 되어 굳어 갔고
집터는
가라앉아서
황지연못 되었단다.
- 김민정 시인의『황지연못』전문
김민정 시인은 황지연못의 탄생과 이름이 생긴 유래를 애잔한 가슴으로 시를 읊어서 독자들 가슴에 심금을 울리고 있다. 시조비를 다 읽을 무렵에 그녀의 눈시울이 촉촉이 젖어 들고 있었다.
그는 옆에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다. 황지연못의 시어를 다 읽은 그녀의 모습을 보니 슬퍼 보였다. 그는 그녀의 두 손을 잡으며 위로의 말을 한다.
“우리사라 시인님! 이제 그만 슬픔을 거두세요!”
“·······!”
그들은 다음 코스를 향해서 추전역에 도착한 무궁화호를 타기 위해서 추전역 광장에 서 있는 ‘시비’와의 아쉬움을 남기며 승차를 한다. 무심한 태백선의 열차는 기적소리를 크게 질러 대며 그들을 싣고 달리기 시작한다. 추전역에 우뚝 서 있는 시비가 시야에서 멀어져 간다. 이별을 고하고 있는 열차가…….
이별은 순간의 이별 그리고 짧은 이별, 긴 이별, 영원에의 이별이 있다. 그러나 이별은 우리에게 추억과 그리움을 가슴에 남겨두면서 그 무엇인가 사무치게도 한다.
호반의 여정은 이처럼 우리네 가슴을 설레이게도 하고 또 슬프게도 하는가. 그리고 마음까지도 아리게 하는가. 달리고 있는 열차의 객실시트에 나란히 앉아서 그는 그녀의 시선을 쳐다본다. 그녀의 눈가에는 아직도 물기가 촉촉하게 서려있었다. 그는 따뜻하고 다정다감한 말을 한다.
“사라! 이제 그만 감정을 추스려요. 이러다가는 몸 상하겠어요. 슬픔을 넘 오 래 오래 간직하면 건강에 해롭답니다.”
그의 그 말에 감정이 예민한 그녀는 흐느낀다.
“고마워·······!”
그녀의 얼굴은 아직도 핑크빛이다. 황지연못의 사연은 아직도 그녀의 뇌리에서 떠날 줄을 모르며 시성의 여운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동해바다의 아름다운 경관이 차창너머로 한 눈에 들어오며 한 폭의 그림같이 보인다.
수평선의 검푸른 물결이 해변에 가까이 다다르면서 파도로 변하여 갯바위와 추돌한다. 그리고 새하얀 물보라가 계속 허공으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 때, 열차의 객실에서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망상역(간이역)에 잠시 정차한다면서 내릴 손님은 기차에서 내리시라 한다.
“사라, 우리 내리지?”
“그래.”
망상역에 도착한 무궁화호 열차에서 그들은 손을 잡고 내린다. 여기서 다음역이 정동진역이고, 그 다음역이 태백선의 종착역인 강릉역이다.
그들은 망상역의 게이트를 빠져 나와서 망상해수욕을 향해 가고 있었다. 잠시 후에 푸른 바다가 눈앞에 나타났다. 망상해수욕장이·······.
이곳 망상해수욕장은 강원도의 그 어느 해수욕장보다도 풍광이 아름다워 보였다. 좌우측에서 이 해수욕장을 바라보면 그 모습이 마치 우주에서 인공위성을 타고 망원렌즈로 줌을 당겨서 보는 동영상 같고, 직선형 같으면서도 직선이 아닌 것처럼 자연과 바다가 함께 어우러진 아름다운 그림 같다.
푸른 바다를 둘러싸고 있는 해변의 초원지대와 산들이 바다에서 밀려오는 갯바람을 마주 한다. 파도가 갯바위에 부딪히면서 생기는 새하얀 물보라가 얼굴을 스쳐간다. 산야에서 불어오는 바람과는 달리 축축한 느낌을 준다.
그들은 손을 잡고 갯바위에서 백사장 쪽으로 나란히 걷는다. 보폭을 옮길 때마다 모래밭에 발자국이 생기면서 사각사각 소리가 난다. 그녀의 시선이 망망대해 수평선으로 향한다. 그의 감정의 느낌과는 달리 시인이 바라다보는 저 넓은 바다의 오묘한 시각을 넘는 가보다.
자연의 꽃과 나비는 한 둥지에서 살면서, 나비는 세상을 날아다니며 먹이를 물어다가 꽃에게 가져다주고, 꽃은 둥지 속에서 그것을 갖다 준 것들을 소화해서 다시 세상 밖으로 내보내어 씨앗을 뿌려주게 한다.
나무가 사랑을 하게 되면 커가면서 두 나무 가지가 서로 붙어서 분리할 수 없게 된다. 나무들이 성년이 돼서 꽃을 피우게 될 때, 한 나무 꽃은 하얀 꽃을 피워내고, 다른 한 나무 꽃은 분홍색 꽃을 피워낸다. 각자의 꽃들의 본색은 변하지 않는다.
사랑! 사랑은 둘이면서도 둘이 아닌 하나가 되고, 하나면서 하나가 아닌 것이 아니던가? 그래서 사랑은 연리지(連理枝)라고 일컫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모래사장을 거닐면서도 현실이 아닌 가공의 빛 길을 달려가고 있다. 그녀가 말을 한다.
“저 멀리 수평선 넘어에 무엇이 있을까?”
시인의 말에 그는
“끝이 없는 미지의 세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겠지!”
“·······?”
“·······!”
동해바다를 둘러싸고 있는 바위산이 석양의 햇빛을 가리며 자연과 백사장이 그들의 발걸음을 서역으로 재촉한다. 텅 비어 있는 가을 해변의 모래톱 위에는 바위 하나가 우뚝 서 있다.
갈매기들이 그들의 머리위로 떼를 지어날아 다니며 축복의 노래를 불러주고 있다. 행복한 순간이다. 그들은 노을을 따라서 바다관광호텔 크리스탈 룸 카페로 들어갔다.
마침 오늘 사라의 서른세 번째 생일을 맞이하여 원탁에 마주 앉는다. 아름다운 불빛 아래서 그들은 팔걸이를 하면서 축배의 와인 잔을 높이 들고, 러브콜을 한다.
“사라 공주, 생일 축하해!”
“고마워, 오빠!”
‘야가, 날 헷갈리게 하네, 그래 선배가 형이 되고, 형이 오빠가 되는 게 수순이 겠지. 하지만 기분은 짱이다!’
그는 사라의 예쁜 얼굴을 쳐다보면서 안주머니에서 작은 상자 하나를 꺼내서 그녀에게 준다.
“이거 받아.”
“그게 뭔데?”
그녀는 예쁘게 포장된 상자를 받아서 빨간 리본을 풀어본다. 그리고 그 상자를 열어보는 순간 깜짝 놀란다.
“어머!”
“내, 마음이야. 아직 준비는 안 되었지만, 마음의 준비는 다 됐어!”
그의 그 말에 그녀의 가슴은 설레이며 쿵덕쿵덕 한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이 연분홍빛으로 변한다.
‘그럼, 오빠가 내게 청혼을 하는 거야!’
사라는 이현의 시선을 마주하면서 말을 한다.
“고마워, 그렇게 할게!”
상자에서 커플반지를 꺼낸 그들은 한 개씩 나누어 들고 서로의 손가락에 끼워주면서 마음으로는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