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 - 김익하님의 사진솜씨
사랑하기를 나만 한 이가 몇이나 될까.
여름 휴가가 끝나기 하루 전, 우리나라 연꽃의 최초재배지로 알려진 경기도 시흥시 하중동 219번지 관곡지(官谷池)
연꽃테마공원을 찾았다. 금년 7·8월에 태양을 보지 못하고 줄창 우기(雨期)에 갖혀있었는데. 그날도 날씨는 예외는
아니었다. 가득이나 연재배지(蓮栽培地)가 질척이는 곳인데, 못둑으로 옮겨놓는 발이 푹푹 파묻혔다. 그러나 연복
(蓮福)은 있어 연꽃을 구경하는 철이 조금 지났지만 아침 일찍 부지런을 피운 덕에 개화한 연꽃들을 만날 수 있었다.
관곡지 연못이 있는 이 재실은 강희맹의 사위인 권만형(權萬衡1727-?)에게 넘겨진 이래 안동 권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이곳에 중국 남경 전당강에서 연씨를 가져와 심은 사람은 강희맹(姜希孟 1324-1483)이다. 그는 당대 문장가이면서
[금양잡록(衿陽雜錄)]이란 농업관련 책을 저술할 만큼 농업에도 관심이 많은 선비였다. 그는 1463년(세조9년)
진헌부사로 임명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때 그는 연씨를 가져와 관곡지 연못에 심어 우리나라 최초로 연을 길러
냈다. 지금으로부터 600년에서 조금 모자라는 548년 전 일이다.
관곡지다. 그리 너르지 않은 연못에 가득 연이 덮여 있다.
그런 기록이 어긋남이 없다면,그 이전에 모든 분야에서 표현된 연꽃 그림이나 부조물들은 외국으로부터 전해진 문서에
의해서 그려졌거나, 여행에서 본 것을 머리에 담아와 표현했다고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그런데 불교문화가 융성하였던
신라나, 일찍 숭불정책(崇佛政策)을 폈던 고려에서 불교와 인연이 깊은 연이 조선조에 처음으로 이 나라에 들어왔다는
게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시기가 늦었다.
연(蓮)이나 연꽃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게, 중국 송(宋)나라 주무숙(周茂淑 .주돈이 1017-
1073)의 수필《애련설(愛蓮說)》이고, 일명 연시(戀詩)의 대명사로 알려진 채련곡(採蓮曲)이다. 본디 '연 캐는 노래'의 뜻을
가진 채련곡은 노동요(勞動謠)로 불러졌는데, 연밭에서 남녀의 감정이 얽히다보니, 그것이 곧 연시로 상징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시인묵객들은, 아니 시를 나타내는 글재주가 있는 사람들은 너도나도 한번쯤 채련곡을 지어 남녀의
정회를 나타내고자 했던 것이다.
채련곡에 있어, 국내 작가의 것에는 허난설헌(許蘭雪軒)의 것이, 중국 시인의 것에선 이백(李白)의 것이 널리 읽혀지고
있다. 그런데 허난설헌의 「채련곡」은 중국의 당나라 황보송(皇甫松 )의 채련곡의 모작(模作)이라고 지적하는 이도
있다. 특히 끝련에서 그런 지적이 일었다.
다음은 주무숙(周茂淑 1017-1073)의 수필《애련설(愛蓮說)》이다.
水陸草木之花 可愛者 甚蕃이로다. 晉陶淵明은 獨愛菊하고, 自李唐來로 世人이 甚愛牡丹하대, 予獨愛蓮之出於淤泥而不染하고, 濯淸漣而不妖하고, 中通外直하며, 不蔓不枝하고, 香遠益淸하야, 亭亭淨植하여, 可遠觀而不可褻翫焉이라. 予謂菊은 花之隱逸者也오, 牡丹은 花之富貴者也오, 蓮은 花之君子者也라하노라. 噫라! 菊之愛는 陶後에 鮮有聞이오. 蓮之愛는 同予者 何人고, 牡丹之愛는 宜乎衆矣이로다.
물과 뭍의 초목으로부터 피는 꽃들 가운데는 사랑할 만한 것이 매우 많다. (그러나) 진나라 도연명은 유독 국화를 사랑하였고, [이씨(李氏)의] 당(唐)나라 이후, 세상 사람들은 모란을 몹시 사랑하게 되었다.
(그런데) 나만 홀로 연꽃을 사랑한다. 연꽃이 진흙 속에서 나왔으나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며, 맑은 물결에 몸을 씻었으나, 요염하지 않고, 줄기의 가운데는 통해 있으면서도 밖으로는 곧고. 덩굴이나 가지도 뻗어나지 않으며. 향기는 멀리 퍼지면서 더욱 맑고, 꼿꼿하고 깨끗이 서 있어 멀리서만 바라볼 수 있을 뿐 함부로 완상할 수 없는 점을 사랑한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국화는 꽃 가운데 은일자며, 모란은 꽃 가운데 부귀자고, 연꽃은 꽃 가운데 군자이다. 아! 국화를 사랑함은 도연명 이후 그 소문이 드문 한 데, 앞으로 연꽃을 사랑하는 이, 나만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모란만을 사랑하는 이런 세태에서.
채련곡(採蓮曲) / 허란설헌(許蘭雪軒1563-1589)
秋淨長湖碧玉流
蓮花深處鷄蘭舟
逢郞隔水投蓮子
或被人知半日羞
해맑은 가을 호수 옥처럼 새파란데
연꽃 우거진 곳에 목란배를 매었네
물건너 님을 만나 연밥을 따 던지고
행여나 뉘 봤을까 반나절 부끄러웠네
채련자(採蓮子) 당(唐)나라 황보송(皇甫松)
菡萏香蓮十頃陂
小姑貪戱采蓮遲
晩來弄水船頭湠
更脫紅裙裏鴨兒
연꽃향기 십경되는 연못에 퍼지고
여자아이는 노느라 정신없어 연밥 따기는 늦어지네
밤이 오고 물장난을 치다 뱃머리가 축축이 젖어,
빨간 치마를 벗어 맨발을 감싸네.
前調
船動湖光灩灩秋
貧看年少信船流
無端隔水抛蓮子
遙被人知半日羞
배 움직이자 가을 호수 물결이 출렁출렁,
소년에 눈이 팔려, 배는 마음대로 흘러가네.
괜시리 물 건너로 연밥을 던져놓고,
저 멀리 남의 눈에 띌까 반나절 부끄러웠네
채련곡(採蓮曲) 당(唐)나라 이백(李白 701-762)
若耶溪傍採蓮女
笑隔荷花共人語
日照新粧水底明
日照新粧水底明
風飄香袖空中擧
岸上誰家遊冶郞
三三五五映垂楊
紫류嘶入落花去
見此躊躇空斷腸
약야계 주변에서 연밥 따는 아가씨는
연꽃 사이 미소 띠고 벗과 속삭이네
햇볕은 고운 얼굴 물 밑까지 비추고
향기로운 소맷자락 바람에 날리네
뉘 집 젊은이들 인지 연못 기슭에
수양버들 사이 삼삼오오 아른거리다
날리는 꽃잎 속 말 울리며 사라지니
이를 보고 설레다 공연히 가슴 아프네
채련곡(採蓮曲) 당(唐)나라 왕창령(王昌齡 698-755)
荷葉羅裙一色裁
芙蓉向臉兩變開
亂入池中看不見
聞歌始覺有人來
연잎과 비단치마 한 가지 색이고
연꽃과 얼굴 마주하여 양쪽으로 피었네
연못 속 함께 섞어 분간키 어렵드니
노랫소리 듣고서야 사람인 줄 알았네
채련곡(採蓮曲) 송(宋)나라 하응룡(何應龍)
采蓮時節懶勻妝
月到波心發棹忙
月到波心發棹忙
莫向荷花深處去
荷花深處有鴛鴦
연을 딸 땐 화장도 않더니
달이 뜨니 어인일로 노를 젓는가
연꽃 무더기엔 가지를 마오
꽃 사이에 원앙새 노느니.
채련곡(採蓮曲) 당(唐)나라 최국보(崔國輔 687-755)
玉嶼花爭發
金塘水亂流
相逢畏相失
竝着採蓮舟
옥서(玉嶼)에는 꽃이 다투어 피고
금당(金塘)에는 물이 어지럽게 흐르누나
서로 만나자 잃어버릴까 두려워
연밥 따는 배 아울러서 붙여놓았네
채련곡(採蓮曲) 류방평(劉方平)
落日淸江裏
荊歌艶楚腰
採蓮從少慣
十五卽乘潮
저물녘의 맑은 강에는
형가를 부르는 초희(楚姬)의 허리가 요염하네
사연밥 따기 어려서부터 습관이 되어
열다섯 살이 되면 조수를 타곤 했네.
채련곡차대동루선운(採蓮曲次大同樓船韻) 손곡(蓀谷) 이달(李達1539-1612)
蓮葉參差蓮子多
蓮花相間女郞歌
歸時相約橫塘口
辛苦移舟逆上波
연입은 들쑥날쑥 연밥은 많은데
연꽃 사이에서 아가씨 노래 부르네
돌아갈 때 횡당 어귀에서 만나자고 했으니
애써 배를 저어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네
*횡당은 남경 교외에 있는 둑
채련곡(採蓮曲) 1 명(明)나라 오국륜(吳國倫 1524-1593)
江南行採蓮
蓮露如珠瀉
白潮翊其上
遊魚戱其下
강남에서 연꽃을 따러가니
연 이슬은 옥구슬로 쏟아지는 듯하네
흰새는 그 위로 날아다니고
물에 노는 물고기는 그 아래에서 장난치네
채련곡(採蓮曲) 2 명(明)나라 오국륜(吳國倫 1524-1593)
江南行採蓮
蓮花曜朝日
素腕刺船來
朱脣唱歌出
강남에서 연꽃을 따러가니
연꽃은 아침 해를 밝게 비추네
흰 소매로 배 저어 오며
붉은 입술에서 노랫소리가 들리네.
채련곡(採蓮曲) 홍만종(洪萬宗 1643-1725)
彼美采蓮女
繫舟橫塘渚
羞見馬上郞
笑入荷花去
연밥 따는 아름다운 저 아가씨
가로지른 못가에 배 매어두고
말을 탄 총각보고 부끄러워
미소 지으며 연꽃 밭으로 들어가 버리네.
채련곡(採蓮曲) 이승소(李承召 1422-1484)
若耶溪邊採蓮女
穿花蕩漿浪浮霜
芙蓉花壓靑螺䯻
靚粧姣服明朝陽
輕風吹過蘭苕上
羅衣細縮鎖鴛鴦
鸀鳿雙飛日欲曛
回頭不覺愁中腸
若耶溪 가의 연꽃 따는 아가씨
꽃 속을 헤치며 삿대 저으니 흰 물결 이네.
삼단 같은 머리에 연꽃 꽂으니
고운 화장 예쁜 옷 아침 햇볕에 밝고
산들바람은 난초와 능소화 위로 불어오고
비단옷의 가는 주름에는 원앙을 수놓았네. 매다
물새는 쌍쌍이 날고 해는 지려 하니
머리 돌림에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시름겹네.
채련곡(採蓮曲) 당(唐)나라 하지장(賀知章 659-744)
稽山罷霧鬱嵯峨 : 안개 걷힌 회계산은 울창하고도 높아
鏡水無風也自波 : 거울같이 맑은 물은 바람 없이도 물결이네
莫言春度芳菲盡 : 봄이 지나 꽃다운 풀 없다고 말하지 말라
別有中流采芰荷 : 가운데 흐르는 물에 마름과 연밥 딸 것이 있다네.
채련곡(採蓮曲) 소강(蕭綱 503-551)
晩日照空矶
采蓮承晩晖
风起湖难渡
蓮多摘未稀
棹动芙蓉落
船移白鷺飞
荷丝傍绕腕
菱角远牵衣
인적 없는 낚시터에 석양이 들면
이어진 연꽃은 빛나는구나
호수에 바람이 불어 물결이 일고
널려있는 연꽃을 많이도 꺾었구나
노를 저으니 꽃잎은 떨어지고
배가 움직이니 백로가 나는구나
연밥은 손목을 휘감아오고
마름의 열매는 옷깃을 끄누나
-청나라 화가 심복(沈復 1763-1825)의 자전적 수필 부생육기(浮生六記) 중에서 -
여름에 연꽃이 처음 필 때에는, 꽃들이 저녁이면 오므라들고 아침이면 활짝 피어난다. 운이(陣云; 심복의 처)는
작은 비단 주머니에 엽차를 조금 싸서, 저녁에 花心(화심)에 놔두었다가 다음 날 아침에 이것을 꺼내서 샘물을
끓여 차를 만들기를 좋아했다. 그 차의 향내는 유난히 좋았다.”
연꽃은 주돈이의 《애련설》에서 표현했듯 진흙에서 피어났으나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정결함 때문에 우리 나라
선비들도 그 고결함을 닮고자, 발길이 닿는 여러 곳에다 으레 크고 작은 연못을 조성하고, 그 옆에 정자를 세웠
다. 서울의 궁궐은 물론이고 지방 곳곳에 선비가 거처한 곳이건 가리지 않았다.
창덕궁의 애련정(愛蓮亭), 경복궁의 향원정(香遠亭)이나, 또 곳곳에 세워진 부용정(芙蓉亭), 익청정(益淸亭),
연정(蓮亭) 등의 정자이름이 붙은 곳이 그렇게 조성되었다. 부용(芙蓉)은 연꽃의 별칭인데 부거, 함담. 정우라고도
한다.
연꽃의 10가지 특성
이제염오(離諸染汚) 연꽃은 진흙탕에서 자라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는다.
불여악구(不與惡俱) 연꽃잎 위에는 한 방울의 오물도 머무르지 않는다.
계향충만(戒香充滿) 연꽃이 피면 물속의 시궁창 냄새가 사라지고 향기가 연못에 가득하다.
본체청정(本體淸淨) 연꽃은 어떤 곳에 있어도 푸르고 맑은 줄기와 잎을 유지한다.
면상희이(面相喜怡) 연꽃의 모양은 둥글고 원만하여 보고 있으면 마음이 절로 온화해지고 즐거워진다.
유연불삽(柔軟不澁) 연꽃의 줄기는 부드럽고 유연하다. 그래서 좀처럼 바람이나 충격에 부러지지 않는다.
견자개길(見者皆吉) 연꽃을 꿈에 보면 길하다고 한다.
개부구족(開敷具足) 연꽃은 피면 필히 열매를 맺는다.
성숙청정(成熟淸淨) 연꽃은 만개했을 때 색깔이 곱기로 유명하다.
생이유상(生已有想) 연꽃은 날 때부터 다르다.
연꽃의 모든 부분이 다 약효를 발휘한다.
연꽃의 열매와 종자를 연자육(蓮子肉)이라 하며, 잎을 하엽(荷葉), 뿌리를 우절(藕節), 과방을 연방(蓮房), 암술을
연수(蓮鬚), 종자안의 녹색 배아를 연자심(蓮子心)이라고 하는데, 이들 모두 약효를 지니고 있다.
수련(睡蓮), 잎조차 수면에 내리는 그 겸손(謙遜)
아직경 2M 브라질 마존강의 원산지 빅토리아 아마조니카(Victoria Amazonica)이다. 번식이 어려워 우리나라
에서는 제주도 여미지, 태안 청산 수목원 등 10곳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