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향기(제1평설집)
대숲에 사는 바람 / 임종찬 - 시의 향기 28
시조시인 김민정
2009. 4. 4. 21:53
[2004년 07월 26일 국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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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향기 - 대숲에 사는 바람 <임종찬> |
대숲에 사는 바람은 사서삼경을 다 외는지
있는 듯 없는 듯이 산 듯 죽은 듯이
세월에 나부끼면서 걱정 없이 살더라
왕대밭에 왕대바람 퉁소 대롱을 빠져 나와
동구 밖 미루나무 까치알을 굴리더니
어느새 대숲에 와서 살 비비며 살더라
세월이 심심하면 대숲으로 갈 일이다
대숲에 사는 바람 걱정 없는 흔들림을
우리도 조금은 배워 몸 흔들며 살 일이다
대숲에 사는 바람은 늘 여유가 있다. 인간들처럼 공부에 쫓기지 않고 이미 '사서삼경'도 다 외워 넉넉하게 세월에 나부끼면서 있다. 바람은 왕대밭에 가면 왕대와 어울리고, 또 어느새 빠져 나와 동구 밖 미루나무 까치알을 굴리더니, 또 대숲에 와서는 대와 살 비비며 살고 있다고 화자(話者)는 말하고 있다. 바람은 아무것에도 구애됨이 없이 그저 넉넉하고 자유롭고 평화롭다.
셋째 수에 오면 바람은 남을 흔드는 것이 아니라 스
스로를 흔들고 있다. 대숲의 바람 소리, 그 소소한 바
람 소리는 바로 우리들 삶의 여유로움이다. 스스로를
흔들면서도 꼿꼿하게 서는 대나무, 그리고 그 대와 어
울리며 대숲 소리를 만들어 내는 바람의 여유와 조화,
그러한 자연에게서 인간은 지혜를 배워야 한다고 화자
는 말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