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병영
정거장 / 민병도 - 시가 있는 병영 29
시조시인 김민정
2008. 9. 27.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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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거기서 내렸어야 했다는 것을 기차가 떠나기 전엔 눈치채지 못했네 창 너머 벚꽃에 취해, 오지 않는 시간에 묶여
그때 거기서 내렸어야 옳았다는 것을 자리를 내줄 때까진 까맣게 알지 못했네 갱상도, 돌이 씹히는 사투리와 비 사이
그저 산다는 것은 달력에 밑줄 긋기 이를테면 그것은 또 지나쳐서 되돌아가기 놓치고 되돌아보는 정거장은 더욱 환했네
작가는 1953년 경북 청도 출생. 시인·화가. 1976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1978년 시문학 추천.시집 ‘갈
수 없는 고독’ ‘불이(不二)의 노래’ ‘지상의 하루’ ‘섬’ ‘무상의 집’ ‘청동의 배를 타고’ ‘슬픔의 상류’ ‘마음 저
울’ 등
우리는 생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반성과 후회를 하는가. 수많은 헛된 욕망 속에 살다가 문득 뒤돌아보는
순간이 오면 과거의 시간들이 부끄럽게 느껴질 때가 많다. 왜 그때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왜 헛된 욕망·욕
심들을 진작에 버리지 못했을까. 그 이유들을 화자는 ‘창 너머 벚꽃에 취해, 오지 않는 시간에 묶여’라고 했
다.
벚꽃처럼 화려하되 화자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 기다렸지만 오지 않는 그 시간에 묶여 내려야 할 결단
의 순간을 놓쳐버린 것이다. 자리를 내 줘야 할 때 비로소 너무 오래 그 자리에 머물렀음을 화자는 깨닫는
다. 3연에 오면 화자는 ‘그저 산다는 것은 / 달력에 밑줄 긋기’라고 해 특별한 것 없이 또 하루의 살아냄이
삶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니면 지나쳐 가다 이게 아닌데 싶어 다시 돌아가는 것이 삶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놓치고 되돌아보는 정거장은 더욱 환했네’라고 해 미처 행동하지 못하고, 지나친 것들이 더욱 환하
고 빛나 보임을 말한다. 프로스트의 시 ‘숲 속의 두 갈래 길’에서 ‘가지 않은 길’에 대해 더 미련이 남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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