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미상 옛 그림 다 자란 연잎 위를 기름종개 물고 나는 물총새를 보았다 인사동 좁은 골목이 먹물처럼 푸른 날
일곱 문 반짜리 내 유년이 잠겨 있는 그 여름 흰 똥 묻은 삐딱한 검정 말뚝 물총새 붉은 발목이 단풍처럼 고왔다
텔레비전 화면 속 녹이 슨 갈대밭에 폐수를 배경으로 실루엣만 날아간다 길 없는 길을 떠돌다 되돌아온 물총새
이 시의 시적 화자는 인사동 좁은 골목에서 작자 미상의 옛그림을 보고 있다. 연잎 위를 기름종개를 물고
유유자적하게 날고 있는 물총새는 자연과 함께 자연의 일부가 되어 날고 있어 아름답게 느껴진다. 2연에서
는 시인의 유년 체험과 관련되는 ‘흰 똥 묻은 검정 말뚝’이라고 하여 물총새의 흰 똥마저도 아름다운 자연의
일부로 느껴지며, 물총새의 붉은 발목과 붉은 단풍의 유사성을 통해 오염되지 않은 건강하고 아름다운 자
연의 모습을 보여준다. 3연에서는 텔레비전 화면 속에 비치는 물총새의 모습이다. 1, 2연에서 보여 준 자연의 아름다움이 아닌
녹이 슨 듯한 갈대밭과 악취가 풍기는 지저분한 폐수가 흘러가는, 물총새가 내려앉을 만한 공간도 없는 도
시의 풍경이다. ‘길 없는 길을 떠돌다 되돌아온 물총새’의 모습을 통해 환경파괴로 생존권마저 위협받는 생
태계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높은 서정성을 지닌 서정시면서 환경문제를 다룬 환경시라고 볼 수 있다. 또 이 시는 어린 시
절의 아름다움을 잃어가는 인간의 모습, 고향을 상실해 가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해석해 볼
수도 있다. <시풀이:김민정-시인·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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